1월에는 글을 올리지 못해 그동안 출간된 신간들을 보고 있는데 추천할 만한 책이 거의 보이지 않네요. 확실히 기독교 출판 업계가 침체 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전에도 읽지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기독교인들이 책을 읽지 않습니다. 특히 목회자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썩에 마음에 드는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관심을 갖고 주목할 몇 권의 책을 선별해 올립니다.
언제까지 사탄이 주는 생각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오늘은, 나는 이미 망했다’고 생각할 것인가? 이 책에서는 이미 사탄은 패배한 적이라고 거듭 말한다. 또한 이미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모든 것을 주셨다고 말한다. 인간이 경험하는 부정적인 생각, 충동적인 감정, 습관적인 죄 등 모든 영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하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멍에를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성경을 읽으면서 위로가 되고 힘을 주었던 성경 구절을 따로 모았습니다. 저의 개인적으로 은혜 받았던 구절입니다. 특별한 순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가는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시 23: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18:1-2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출애굽기 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시편 59: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시편 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사야 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디모데후서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시편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46:1-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46: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시]46: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마태복음 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시편 34: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편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여호수아 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시편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정가는 무려 39,800원에 이르며, 916쪽이다. 윤리적 관점에서 산상수훈이해하는 최근의 책중 초고의 책이라 할 수 있다.
2003년, 초판이 나온 이래 《하나님 나라 윤리》는 21세기의 ‘표준 기독교 윤리 교과서’로 자리매김되었다. 성경에, 그중에서도 특히 산상수훈에 탄탄히 뿌리박고 있는 이 책은 많은 신학생과 목회자 그리고 일반 독자들에게 기독교의 윤리 사상을 폭넓게 소개하고 그들에게 도전을 던지는 틀을 제시했다. 초판을 크게 개정한 이 책은 이 시대의 주요 윤리 이슈를 훌륭하게 다룬다. 업데이트된 데이터와 사례, 전 세계를 아우르는 시각을 담고 있고, 성 포용 언어를 더 많이 사용했으며, 방법론에 더 분명한 초점을 맞추고, 각 장 끝에 토론할 문제를 덧붙였으며, 상당한 용어 설명을 추가했다.
때론 살아가야 할 절실한 이유가 필요하다. 마음이 피폐해져 있거나 큰 상실감에 빠져 있을 때, 때론 내가 감당하기 힘든 상황과 마주할 때, ‘구원의 빛’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틈입하기도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사막화된 내면에 바늘이 빼곡해서 바람만 불어도 가슴이 쓰”릴 때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되고,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만난 광활한 해바라기 평원과, 고흐가 그린 <밤의 카페>에 실제로 앉아서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싶다’던 고흐를 떠올리며 내면의 억눌린 무언가가 풀어졌던 경험을 들려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처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만난 렘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을 통해 용기와 새로운 젊음을 찾았다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화가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코크슈카의 경험담처럼, 이 책이 소개하는 성경 속 다양한 인물의 삶과 그 삶을 화폭에 담아낸 명화들을 통해 공감과 위로, 삶의 활력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림이 가진 힘을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항상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잠언은 우리 일상과 아주 가까운 책이다. 그렇다고 신학이 부재한 실용적 격언집은 아니다. 『특강 잠언』은 신학과 일상을, 거룩과 세속을, 영광과 평범을 연결한다. 방대한 연구 자료와 뛰어난 해석이 담긴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일상을 깨우는 잠언 신학의 정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아득한 세월을 견딘 유대의 가르침이 탁월한 주해와 함께 여기 도착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 지혜를 사랑하라!”
IVP 특강시리즈 다섯 번째 책이다. 예레미야, 이사야, 욥기, 전도사, 이제 잠언까지 출간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출간이 될지 알 수 없으나 꽤나 괜찮은 책이라 여겨진다. 주석과 실용의 중간쯤 어디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기독교 서적을 거의 보지 않았다.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몇 권 외에는 거의 읽지 않았다. 신간을 찾아보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출판사들이 눈에 많이 띈다. 무거운 신학도서보다는 일반 성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런 책들이다. 앞으로 기독교 출판계가 어떻게 변해갈지 사뭇 궁금해지는 2024년 1월이다.
성경 공부를 위한 기본적인 방법을 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이곳에서는 성경 공부를 하는 방법과 단계를 정리해 소개합니다. 이곳은 대략적인 방법을 소개합니다. 이후에 더 자세한 방법들은 추가적으로 다른 글을 통해 소개합니다.
성경공부의 목적
먼저 성경공부의 목적을 알아 봅시다. 먼저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 그리고 뜻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경공부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뜻대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추가적으로 성경을 앎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있고, 확신이 없는 사람들을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는 이러한 주된 목적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외에는 목사는 설교하기 위해서, 학자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성도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성경공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성경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목적으로 성경공부를 하고 싶은가요?
성경공부의 목적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전하기 위해
더 많은 목적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성경 공부의 단계
■ 기초 교리 배우기
교리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이 부분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무엇이고, 우리가 읽고 묵상하는 성경은 무엇이며, 하나님과 인간, 타락, 구속, 예수님, 종말, 등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면 학습과 세례문답을 할 때 공부하는 내용들입니다. 이 부분만 잘해도 기본적인 소양을 갖출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성경 읽기입니다. 성경은 성경 공부의 시작이자 마지막입니다. 지난번에 [성경을 읽는 7단계]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성경 읽기의 단계를 알고 싶으면 가셔서 도움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경 읽기는 신자에게 있어서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장 기초이자 기본이며, 최종 목적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인류의 역사의 흐름과 구원의 방법,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종말의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 기본 교리 배우기
저는 기본 교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앞선 '기초 교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고 조직적으로 공부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조직신학 입문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반 교인들이 깊이 교리를 공부하는 단계는 여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창조란 무엇입니까?
사람은 어떻게 창조되었습니까?
타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타락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까?
주제별로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뒤에 바로 나오는 '주제별 성경 공부'와 같이 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성경의 전체 흐름을 알고, 기초적인 지식이 있는 신자들이 좀더 깊은 단계로 나아갈 때 사용합니다.
■ 주제별 성경 공부
지금부터 배우는 성경 공부는 중급 이상의 단계로 보시면 됩니다. 성경 읽기와 기본 교리를 마쳤다면 본격적으로 성경을 공부할 때입니다. 성경의 인물을 연구하고, 성경의 지리, 역사 등을 심층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특히 각 주제별로 성경을 공부하는 단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필요에 따라 주제별 성경공부와 기본교리는 순서를 바꾸거나, 병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 인물 연구하기
성경의 전쟁사 연구하기
성경 책별 연구하기
성경의 시대별 연구하기
성경이 비유와 상징을 연구하기
다양한 주제로 성경을 심층 연구하는 단계입니다. 성경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는 지를 알수 있습니다.
이 책도 이스라엘의 구약 시대를 다루지만 고고학과 고대 문헌을 상당한 비중을 두고 다루고 있습니다. 일반 이스라엘 역사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성경 너머의 성경 시대의 주변 국가들의 다양한 문헌들과 비문과 관련된 내용을 통해 구약의 시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ChatGPT와 대화'라는 주제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ChatGPT를 어떻게 사용하고,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 실제적인 질문과 답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ChatGPT를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생각해 보려는 의도입니다.
ChatGPT와 대화를 하다.
I
반가워
ChatGPT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드릴 수 있을까요? 질문이나 토론 주제가 있으시면 알려주시면, 최대한 세부적이고 심도 있는 답변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I
너에게 상담을 받고 싶어
ChatGPT
물론, 어떤 주제에 대해 상담을 받고 싶으신가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분야를 말씀해 주시면, 가능한 한 도움이 되는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I
너는 심리학자이고, 동시에 목사이고, 천주교 사제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어.
ChatGPT
저는 심리학적인 지식과 기독교 신학에 관한 정보를 포괄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나 천주교 사제로서의 경험이나 직분은 제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여러 주제에 대한 이야기와 논의를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가요?
I
넌 잘 하리라 믿어, 넌 지구의 많은 종교적인 글과 논문, 그리고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종교적인 고민을 가진 나에게 답을 잘 해주리라 믿어.
ChatGPT
감사합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종교적인 고민, 신앙, 혹은 기타 어떤 주제든지 질문해 주세요. 최대한 정확하고 상세한 답변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의 고민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I
난 크리스찬이었어. 30년 전, 영적인 경험을 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어. 신학도 하고, 심리학도 했어.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넌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
ChatGPT
당신이 겪고 있는 신앙에 대한 변화는 매우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과정일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종종 삶의 여러 측면에서 나타날 수 있으며, 종교나 신념에 대한 의문이나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먼저, 이러한 변화를 천천히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대한 솔직한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이런 생각이 들게 되었는지, 어떤 경험이 이로 인해 발생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종교나 신앙에 대한 관점은 다양하게 존재하므로,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관련된 문헌을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변화는 자아 발견과 성장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앙의 변화는 전문적인 도움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나 상담사와의 대화를 통해 더 깊은 이해와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는 지인들과의 솔직한 대화와 함께, 내면의 질문에 대답을 찾는 과정을 지속하시기를 바랍니다.
I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영적 체험을 했어. 설교를 듣다 갑자기 가슴에 불이 붙은 것 같은 경험을 했고, 내가 죄인이란 생각에 회개를 했어. 며칠 동안 눈물이 나와 견딜 수가 없었어. 나중에 이것이 거듭남의 체험이라고 하더라고. 너는 이러한 경험이 거듭남의 경험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런 경험이 정말 하나님의 계심을 증명할 수 있을까?
ChatGPT
영적인 경험은 매우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교나 신념체계에서도 유사한 경험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개인의 신앙과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영적 경험이 종종 "거듭남의 경험"으로 언급되며, 많은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강화하는 중요한 증거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의 해석은 믿음이나 신념의 차이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믿음을 뒷받침한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미래의 신앙과 관련된 새로운 이해를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종교적인 신앙은 지속적인 탐구와 성장을 통해 깊어질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경험이 항상 하나님의 존재를 명백히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종교나 무신론적인 입장에서도 각자의 근거와 증거체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과 고찰이 필요하며, 믿음을 탐구하는 여정에서 질문을 하고 응답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I
다른 종교와 무신론자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고? 정말일까? 혹시 너는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이런 경험을 한 다른 종교나 무신론자가 있다면 알려주면 좋겠어. 특히 무신론자에게 이런 경험은 어떻게 일어나는 알고 싶어
ChatGPT
예, 다양한 종교나 무신론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들도 유사한 종류의 영적 경험을 보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각자의 신념 체계나 세계관에서 해석되며, 종교적인 맥락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인 측면에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무신론자들 중에도 명상, 사색, 자아탐구 등을 통해 깊은 내면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신론적인 입장에서도 존재론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경험을 할 수 있으며, 이는 종교적인 경험과 유사한 성격을 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교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명상을 통해 내면의 평화나 깨달음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종교적 맥락이 아니더라도 영적인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경험들은 각 개인의 주관적인 해석과 연결된 신념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됩니다. 종교나 무신론적인 신념이 서로 다르더라도, 공통적으로 내면적인 심리적 경험을 통해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I
성경에는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는 구절이 있어.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불신자를 악인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어. 그렇다면 불신자들에게는 평강이 없다는 말이 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ChatGPT
성경에 있는 구절들은 종종 다양한 해석을 받기도 하며, 특정 문맥이나 시대적,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야 합니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는 문구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내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 구절들을 통해 인간의 죄와 회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이를 불신자에게 일반화하여 "불신자는 평강이 없다"고 결론지으면 공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불신자도 다양한 도덕적, 윤리적 행동을 통해 선을 추구하며 평강을 찾고자 할 수 있습니다. 무신론자나 다른 종교의 신자들도 인간의 선악과 미덕에 대한 고민과 탐구를 통해 개인적인 평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종교적 신념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의 경험과 행동을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신념을 공유하고 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강은 다양한 신념과 생각을 통해 찾아질 수 있는 개인적인 여정일 것입니다.
I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은 당연히 계시기에 의심을 안했거든. 그런데 요즘 갑자기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꾸들어.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평강은 더 없는 것 같고, 교회 안에도 부조리가 많아. 그래서 교회를 다니지 않을까 생각 중이야. 네가 만약 교회 목사라면 어떤 답을 해 주고 싶어?
ChatGPT
당신이 현재 경험하는 신앙적인 어려움은 깊은 고민과 탐구가 필요한 과정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교회나 신앙 공동체와의 소통이나 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며, 목사나 교회 리더로서의 입장에서는 주변 사람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저가 목사라면, 먼저 당신의 어려움을 경청하고 이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깊은 신앙적 고민이나 평강을 찾기 위한 노력에 대해 도울 수 있는 지원을 제공하고자 할 것입니다.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상담: 교회 내의 목사나 상담자와 개인적인 대화를 통해 마음을 열고 고민을 나눌 수 있습니다.
도서나 자료 추천: 신앙과 관련된 도서나 강의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찾아보거나 깊이 있는 고찰을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신앙 경험 탐구: 다른 교회나 신앙 공동체를 찾아보거나, 다양한 종교적 경험을 통해 신앙을 다시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정기적인 목회자 상담: 교회 내에서 제공되는 정기적인 목회자 상담을 통해 교회의 부조리나 어려움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신념은 개인의 성장과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정에서 자신의 마음과 신념에 귀 기울이며, 올바른 지원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I
몇 년 전부터 한국에는 '가나안 교인'들이 많아 생기고 있어. 너는 가나안 교인 또는 가나안 성도를 알고 있니?
ChatGPT
죄송합니다만, 제 지식 기준인 2022년 1월까지 가나안 교인이나 가나안 성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가나안 교인에 대한 최신 정보나 세부적인 내용은 현재 시점에서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가나안 교인이나 가나안 성도에 관련된 최신 정보를 원하신다면, 가나안 교단의 공식 자료나 해당 교회, 단체의 공식 웹사이트 등을 참고하시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또한, 해당 교단이나 단체의 리더, 목사, 혹은 교육자들과의 직접적인 대화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I
그렇구나. 가나안 교인은. 교회를 나가지 않는 교인을 말해. 안나가를 가나안으로 말하는 거지.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
ChatGPT
네, 이해했습니다. "가나안 교인"이라는 용어가 교회를 나가지 않는 교인을 가리킨다는 말을 알고 있습니다. "가나안"은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땅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용어는 교회를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르는 신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용어는 특정 교회나 종교 공동체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I
아니야.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은 지명이지만, 한국에서 유행한 가나안 교인은 일종의 언어유희적인 의미로, 교회를 나가지 않는 교인들을 두고하는 말이지. 이건 꼭 알고 있었으면 좋겠어.
ChatGPT
죄송합니다. 혼돈이 생겼네요. "가나안 교인"이라는 용어가 한국에서 언어유희적인 의미로 사용된다는 맥락을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용되는 특별한 용어와 언어유희는 종종 지역적이며 문화적으로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제 답변에서 발생한 혼돈을 알게돼서 죄송합니다. 언제든지 추가 정보나 질문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I
그럼 다시 질문해 볼께. 한국에 가나안 교인이 200만을 넘었다는 통계를 읽은 적이 있어. 교회를 나가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너는 생각하니?
ChatGPT
가나안 교인이 교회를 나가지 않고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현상은 다양한 이유와 배경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몇 가지 가능한 이유들은 다음과 같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 및 신념: 교회를 나가지 않는 교인들 중에는 개인적인 경험이나 신념에 따라 독립적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나 종교 공동체에 대한 의문: 일부 교인들은 특정 교회나 종교 공동체에 대한 의문이나 불만을 가지고 있어 교회를 나가지만, 여전히 자신의 신앙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교회적인 온라인 혹은 자기주도적인 신앙 활동: 현대에는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교제나 자기주도적인 신앙활동이 더 강조되는 추세가 있어, 교회를 나가지 않고도 신앙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들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의 신앙생활이나 교회 참여에 대한 선택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신념과 경험은 다양하며, 각자의 신앙 여정을 존중하며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I
넌 정말 똑똑하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ChatGPT
감사합니다! 무엇이든 도와드릴 수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질문이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함께 대화하는 것을 즐기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
I
너는 이러한 나의 고민에 대해 나에게 질문할 수 있어?
ChatGPT
물론입니다. 어떤 특정한 고민이나 주제에 대해 논의하고 싶으신가요? 어떤 질문이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지 알려주시면, 최대한 세심하고 유익한 답변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I
만약에 내가 완전히 신을 믿지 않고, 교회를 떠난다고 한다면, 네가 만약 교회의 담임목사라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어?
ChatGPT
만약 당신이 완전히 신을 믿지 않고 교회를 떠나려고 한다면, 이는 깊은 신앙적 고민과 변화의 시기일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민감하게 다가가야 하며, 담임목사로서 제가 제공할 수 있는 조언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신앙 탐구: 먼저, 자신의 신앙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탐구해보세요. 왜 신앙에서 멀어지게 되었는지, 어떤 의문이나 고민이 생겼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열린 대화: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열린 대화입니다. 당신의 고민을 이해하고 듣는 것이 중요하며, 교회에서의 경험과 떠남에 관한 감정을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지원 및 안내 제공: 당신이 신앙적인 여정에서 탐색하는 동안 지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독서나 자기 성장을 위한 자료를 추천하거나, 다른 종교적 또는 철학적인 관점을 탐험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원을 안내해 드릴 수 있습니다.
존중과 이해: 마지막으로, 어떤 결정이든 존중해 드립니다. 신앙에 대한 개인적인 여정은 각자의 삶과 경험에 근거하므로, 이를 존중하며 상호 존중하는 대화가 중요합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그 결정이 당신에게 평화롭고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질문이나 대화를 이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I
네가 목사라면, 내가 어떤 결정을 해도 존중한다는 말은 조금 어패가 있는 것 같아. 왜냐하면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는데,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는데, 그런 나의 선택에 너는 목사로서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ChatGPT
당신이 성경에 따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결정일 것입니다. 목사로서, 믿음의 문제는 종종 복잡하며 심층적인 고민을 동반합니다.
먼저, 나는 다양한 신앙적 배경과 신념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에 관한 결정은 각자의 개인적이고 깊은 고민과 연결되어 있으며, 다양한 이유와 경험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믿음은 영원한 목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신념은 복잡하고 주관적이며,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목사로서 나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관용에 기반한 존중과 이해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존중한다는 것은 당신의 개인적인 신념과 결정을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누구든지 찾으면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선택에 대해 존중하고, 당신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I
답변은 참 좋은 것 같아. 하지만 여전히 너의 답변 속에는 논리적 결함을 가지고 있어. 넌 지금 너의 대답을 어떻게 생각해?
ChatGPT
내 응답이 논리적 결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답변이 부족하거나 모호한 부분이 있다면, 추가 설명이나 더 자세한 질문을 통해 논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의견과 피드백은 항상 환영되며, 논의의 기회를 통해 더 나은 이해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어떤 부분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는지 또는 어떤 추가 정보가 필요한지 알려주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I
갑자기 궁금한 게 있어. 너와 대화할 때 지금 새창을 띄우지 않고 계속 질문과 답을 이어가고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한 질문이나 물음들은 너는 답변을 할 때 참조를 하고 있니? 아니면 질문할 때마다 새로운 답변을 준비해서 하니?
ChatGPT
나는 단일 대화 세션 동안 진행된 모든 이전 대화를 참조하여 답변을 생성합니다. 이를 통해 대화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이전에 나온 주제나 질문에 대해 연결된 답변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번 질문하더라도 이전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답변을 생성합니다.
I
그렇구나. 그럼 내가 질문하나 할께. 나는 네가 무엇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니? 기억 나니?
ChatGPT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전 대화에서 당신이 나에게 물어보신 질문 중 하나였습니다. 당신이 더 나아가 어떤 역할이나 특성으로 나를 상상한다면 궁금해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원하시나요?
I
너는 직업이 뭐니?
ChatGPT
저는 인공 지능 언어 모델로, OpenAI에서 개발한 GPT-3.5 기반의 대화형 인공지능입니다. 즉, 언어 이해와 생성에 특화된 역할을 수행합니다. 직업이라기보다는 기술적인 역할에 가깝습니다. 어떤 주제든 대화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데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I
대답은 참 잘 하는 것 같은데. 답변이 모호해서 내가 뭔가를 선택할 때 확신을 얻기가 힘들어. 넌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 너에게 질문할 때 더 정확하고 명확한 답변을 얻으려면 어떻게 질문해야 할까?
ChatGPT
정확하고 명확한 답변을 얻기 위해서는 질문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적과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질문을 명확하게 정의하여 오해의 여지를 줄이세요. 몇 가지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체적인 질문: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질문을 제시하세요. 예를 들어, "왜" 대신 "어떻게"나 "무엇"과 같은 구체적인 단어를 사용해 보세요.
문맥 제공: 질문에 관련된 추가 문맥이나 배경 정보를 제공하면 높은 수준의 이해와 정확한 답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단일 주제: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세요. 여러 주제를 다루는 복합적인 질문보다는 각각의 주제에 대해 따로 질문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명확한 언어 사용: 모호한 용어나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 가능한 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하세요.
예제 활용: 특정 상황이나 예제를 들어 추가 설명을 제공하면 답변이 더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따르면 정확하고 명확한 답변을 얻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I
그럼 다시 질문해 볼게. 난 요즘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네가 장로교회 목사라면 나에게 어떤 답변을 주고 싶어? 한국의 장로교단의 목사의 관점에서 나에게 답면을 주면 좋겠어.
ChatGPT
당신이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은 깊은 신앙적 고민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만약 나가서 모르는 것이나 의심스러운 것들이 생겨 혼란스러워진다면,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습니다.
공감과 이해: 먼저, 나는 당신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합니다. 신앙의 변화나 의심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그것에 대한 감정은 복잡하고 깊은 것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신앙 여정: 당신이 겪고 있는 신앙적인 변화는 개인적이며, 누구나 다른 신앙 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에서도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열린 대화와 상담: 교회의 목사나 신앙 공동체 내에서 열린 대화와 상담을 통해 신앙적인 고민을 나누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목사나 신앙지도자는 당신의 의문에 공감하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신앙 탐험과 독서: 다양한 신앙적 자료를 탐험하고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신앙 여정을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도서나 성경 해석, 다양한 신앙적 관점을 살펴보며 깊이 있는 고찰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신앙 여정은 개인적이고 소중한 것입니다. 깊이 있는 고민을 할 때 교회 내에서 지원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신앙을 더 깊이 탐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I
그렇구나... 어쩔 수 없지.
ChatGPT
당신의 신앙적인 고민은 개인적이고 복잡한 문제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앙 여정을 진솔하게 탐험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교회나 신앙지도자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순간에 자신을 받아들이고 허락하는 것이 중요하며, 언제든지 질문이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여기에 있습니다.
이상으로 ChatGPT와 대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와 닿는 말은 한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평범하고 답답한 목사를 만나 대화하고 실망하고 교회에서 완전히 떠나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사용한 버전은 ChatGPT 3.5였습니다. 후에 4.0으로 업그레이드하면 다시 시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살아계시고 택하신 백성들을 항상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저희를 긍휼히 여기사 지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2024년 새해를 선물로 주심을 감사합니다. 새해를 맞아 첫 주일 예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생각을 아시는 주님, 오늘도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못한 저희의 삶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절이 아니라 우리의 죄악임을 압니다. 이 시간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든 죄악들을 씻어 주시고, 하나님만을 바라며 소망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신년을 맞아 하나님의 높으심을 찬양합니다. 우리 교회가 다시 새롭게 일어서기를 소망합니다. 그동안 저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코로나로 인해 침체하고 주저앉아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 길었던 코로나도 완전히 떠나고 자유로운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이제 다시 힘을 내어 주님께 열심을 내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부서들이 부흥하고, 모든 모임이 활성화되게 하소서. 중보기도팀이 다시 살아나게 하소서. 화요전도팀이 강력하게 일어나게 하소서. 주의 능력과 사랑으로 모든 부서가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무엇보다 예배가 열정적으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동감이 넘치는 예배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찬양할 때 기쁨이 넘치게 하시고, 기도할 때 응답하시며, 말씀을 증거 할 때 치유의 능력과 말씀에 대한 확신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하소서.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지는 잘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저희를 붙드시고 인도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언제나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찾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새해를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계획짜고 다짐을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계획들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들이 되게 하소서.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전파하는 영적 다짐과 결심을 하게 하소서. 무엇보다 진리를 따르고, 선을 행하며,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넘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년 주일 대표기도문
주님을 찬양합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난해를 잘 지나왔습니다. 이렇게 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수 있도록 저희를 사랑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간은 흘러가고, 모든 시간은 사라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의 시간들을 소중히 하며 가장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하는 영적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4년의 첫 주일을 허락하심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언제나 주님을 높이며 찬양하는 인생들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오니 성령으로 이곳에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소서.
올 해는 주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영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복된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주님을 알고 만나게 하시고, 주님으로 인해 큰 기쁨과 소망을 갖게 하소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철저히 신뢰하는 믿음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능력을 회복하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두려움에 잡힌 자들을 용기를 갖고, 죄에 억눌린 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죄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소서. 의심과 원망으로 가득 찬 이들이 주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어디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의 사람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우리의 눈에는 깊은 바다 밖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바닷속에 마른땅을 내시고, 그곳에서 길을 만드십니다.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알 수 없는 광야에서도 친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 길이 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온전히 신뢰하게 하소서.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세계를 위해 기도합니다. 저희 나라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특히 그곳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알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나라 이 땅을 책임지기 위해 기도할 때 지혜와 능력을 주소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그 말씀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게 하옵소서. 그들이 공정과 정의, 평화를 위해 힘쓰게 하옵소서. 그들이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나라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이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믿음 아래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한국 곳곳에 수많은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 한국의 수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웃을 섬기고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과 함께 나누어가고 은혜와 사랑을 나타내고 보일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 주시옵소서. 그들이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이웃을 사랑으로 품으며, 이웃과 함께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교회를 하나님을 사랑하며, 십자가로 하나되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 진리를 따르고, 사회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하소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 할 때 전도자들의 입술에 지혜를 더하시고, 말씀에 능력을 더하여 주소서. 믿는 자들을 더하사 예수님을 나로 고백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게 하소서.
감사하신 주님, 오늘도 주의 음성 듣게 하소서. 완악한 마음을 녹이시고, 주의 성령과 능력으로 역사하사 예배 가운데 크고 비밀한 것들이 우리의 심령 속에 깨달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난 <목회자와 글쓰기 1, 글쓰기를 못하는 이유들>에서 필자는 굉장히 비판적으로 목사들을 보았다.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비판도 받았지만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비판하기 위해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다. 정말 많은 목사들이 글쓰기를 못한다. 필자가 말하는 글쓰기는 뛰어난 수필가나 소설가 등의 능력을 갖추라는 말이 아니다. 글을 읽으면 쉽게 이해가 되고, 명확한 전달이 가능한 수준이면 된다. 거기에 좀 더 문학적인 요소가 가미되면 더할 나위가 없다. 또한 기본적인 문법이나 용어 사용법 등을 익힐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쓴 '목회칼럼'을 읽어보면 기본 문법을 물론이고, 어색한 문체와 기독교 목사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희한한 용어와 어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목사들이 써 놓은 칼럼을 직접 읽어 보라. 필자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글쓰기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숨이 턱턱 막힐 것이다. 그럼에도 오직 '목사'라는 이유 때문에 누군가에게 배울 생각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이 엄청 글을 잘 쓴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번 글은 초반부터 비판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목사와 글쓰기를 생각하면 그냥 비판조로 흘러간다. 이해하시라 답답해서 그러는 것이다.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 얼마나 목회자의 글쓰기를 다루고, 실제적인 내용을 다룰 수 알 수 없으나 기회가 된다면 기본적을 목회칼럼이나 다양한 글쓰기 기법들을 소개할 생각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목사는 글쓰기를 배워야 한다.
결론이자 방법이다. 목사가 글쓰기는 못하는 것을 합리화 해서는 안 된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목사는 writer이다. 글을 쓰지 않는 목사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를 배워야 한다. 글쓰기는 말로 하는 설교와 상당히 다르다. 설교가 청중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면 글쓰기는 자기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물론 글도 궁극적으로 독자를 향한다는 점에서 큰 범주에서는 동일한 방향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 과정과 방법이 다른 것이다.
글쓰기는 일기로부터 시작된다.
일기는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이다. 모든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기에 생각을 글로 바꾸는 끊임없는 훈련이다. 그렇기에 일기를 잘 쓰는 사람은 글쓰기를 잘할 확률이 매우 높다. 또한 일기는 사소한 것에 주목하고, 자신의 사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몰입의 효과가 크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일기를 쓰지 않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목사에게 일기는 일종의 훈련이자 묵상이다. 자신의 일을 되돌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바라보는 행위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복잡한 생각은 정리하여 더 이상 생각이 복잡해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글을 쓰는 것 만으로 생각이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후에 이곳에 글쓰기 방법론에 대해 논하게 된다면 일기 쓰기에 대해 더 많은 설명이 있을 것이다.
성경을 스토리텔링하라.
목사에게 다양한 소양이 있으면 좋지만 기본은 성경이다. 성경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줄아야 한다. 즉 창작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의 전체 흐름을 요약하고,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사건보다는 인물 중심의 성경 읽기를 통해 인물의 성경과 생각들을 읽어내고 분석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라.
목사는 leader인 동시에 reader이다. 무엇보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 다음은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류의 역사와 철학에 개요는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역사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 한다. 또한 중요한 소설을 읽고 이해하고, 응용하는 수준이 되도록 충분히 인문학 서적을 읽어야 한다. 전문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인문학자가 될 필요도 없다. 되면 더욱 좋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끊임없는 글쓰기 훈련을 하라.
시간이 나는 대로 글쓰기 훈련을 해야 한다. 설교처럼 쓰지 말고 일반 글쓰기를 하라는 말이다. 홈페이지가 있다면 목사 칼럼란을 만들어 꾸준히 글을 써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주보에 목회자칼럼을 넣어 매주 넣는 것도 좋다. 처음부터 잘 쓸 수는 없다.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 꾸준한 훈련이야 말로 글쓰기를 잘하는 지름길이다.
목회자는 학자이다. 안타깝게 원론적인 이야기다. 목회자이면서 일 년에 열 권 이상 책을 읽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국내에 수십 만 명의 목사들이 있지만 일 년에 열 권 이상 읽는 목사들이 몇이나 될까? 나의 주변의 목사들을 전체 통계로 본다면 20%도 되지 않는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대부분 담임 목사들은 도서비로 한 달에 얼마의 돈을 따로 받는다. 하지만 책이나 그와 비슷한 일로 쓰지 않고 그냥 한 통장 안에 넣고 생활비로 쓰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사 먹는 일로 쓰는 일이 태반이다. 매우 잘못된 관행이다. 그럼에도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다. 목사는 반드시 도서비로 돈을 받는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교회도 돈을 주지 말고, 서점과 연계하거나, 영수증을 첨부하여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회계부가 있는 것이다.
목사는 좋든 싫은 writer이다. 노력하면 anthor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목사치고 글 잘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이다. 정말 엉터리가 대부분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목사가 있다면 기분이 나쁠지 모르지만 엄연한 사실이고, 개선의 여지도 없다.
목사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가장 많이 쓰고,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은 '설교' 때문이다. 개척교회 목사나 소형 교회 목사는 혼자서 주일오전, 주일 오후, 새벽, 수요일, 심지어 금요일까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심방이나 다른 외부 일로 불가피하게 설교를 해야 한다. 설교를 하기 위해 글을 써야 하고, 다듬어야 한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사는데도 글쓰기는 조금도 늘지 않는다.
한 때 노회 주일학교과 주일학교 연합회 실행위원으로 일하면서 여러 목사님들의 글을 받아 회지에 싣거나 주일학교 소식지에 넣기도 한다. 그런데 목사들이 보내온 글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글쓰기의 최소한의 기본도 없는 이들이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이 아니라 설교다. 그냥 모든 사람을 가르치려는 태도로 일관되어 있다. 또 하나는 1000자 정도에 맞추라고 해도 맞추질 못한다. 거의 2천 자는 기본이고 3천 자가 넘는 이들이 많다. 1000 전후로 맞추려면 글을 완전히 새로 써야 한다. 어쩔 때는 대략적인 주제만 잡고 내가 새로 쓰는 경우가 허다했다. 기분 좋아하는 목사도 있고, 자신의 글을 훼손? 했다고 기분 나빠하는 목사도 많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근본적은 몇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본다. 먼저 목사라는 거만함 때문이다. 서구의 목사들은 수평적 개념이 강하다. 하지만 한국의 목사는 한 교회를 대표하는 정도를 떠나 왕에 가깝다. 자신의 신성한 진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무조건 내가 옳다'라고 주장하는 성향이 매우 매우 매우 강하다. 이러한 태도를 버리고 자신의 무지와 무식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무지를 아는 겸손은 그것이 능력이다.
두 번째는 게으르다. 그들의 목회나 생활이 게으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중의 많은 수의 목사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정신없이 바쁜 목사들도 많다. 그럼에도 자신의 writer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해 보지 않거나 개선의 의지 자체가 없다. 글쓰기는 배워야 한다. 배움은 얼마든지 스스로 가능하고, 인터넷이나 책, 또는 실제 글쓰기 강좌에 가서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목사들은 배우지 않는다. 거만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만이란 문제를 조금 고민해 봐야 한다. 왜 목사들은 거만할까? 진리를 다루기 때문이다. 진리를 읽고, 진리를 설교하기 때문이다. 누가? 목사들이.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목사들에게 너무나 강하다. 성경강해나, 설교를 자신의 일상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적용하는 것이 문제다. 예수님이 진리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정당이 진리는 아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지만, 자신이 좋아는 음식이 유일한 진리는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목사들은 진리를 일상에 욱여넣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거만해진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는 매우 편협적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목사들은 한결같이 답답하고 소통이 힘들다. 좋은 목사들도 많지만, 그들도 매우 편협적이다. 왜 그럴까? 그것도 사실은 진리를 다루기 때문이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진리의 문제로 모든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도 무오한 진리처럼 생각하는 목사들이 많다. 평생 목사만 하는 사람들은 사람과의 소통이 매우 제약되어 있고, 편협적이다. 예전에는 참 좋아했지만 지금은 극혐 하는 단어가 '일념목양' 또는 '일념목회'이다. 평생 목회를 하면 주를 위해 헌신했다는 미사여구는 그가 일반 교인들의 사정을 조금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목사들은 종종 목회를 그만두고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편의점 알바도하고, 택배도 하고, 회사에 들어가 말단으로 근무도 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그러한 일을 하면서 세상이 얼마나 험악하고 무서운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목회가 얼만 편하고, 쉬운가를 알게 된다. 물론 목사들의 말할 수 없는 애로를 어찌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목사는 편하다. 아 사실을 목사들은 잊으면 안 된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글쓰기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가 위의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지도를 해보면, 약간의 훈련을 받고도 많은 개선을 이루는 목사들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쓰기를 배우려는 목사들은 이미 평소에도 많은 책을 읽고 글쓰기 훈련을 하는 이들이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는 주님의 말씀은 진리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chat GPT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은 chat GPT에 대해 무감각하고, 환영하지 않는다. 일반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시대는 점점 chat GPT가 지배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chat GPT는 빅데이터를 넘어 AI 기능으로 변화하면서 서서히 인간을 교체하는 수준으로 진화되고 있다. 며칠 전 어느 그룹의 상담원들이 대거 퇴출되면서 수많은 곳에서 AI가 인간을 대체하고 있다. 단순한 기계 조작을 너머 뉴스와 상담까지 AI가 대체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 책은 미래목회전략연구소 대표로 있는 서경원 목사의 책이다. chat GPT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이나 논의는 하지 않는다. 그냥 chat GPT 활용법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5년 동안 인공지능 기능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이떻게 이것을 목회에 활용할 수 있는 생각 하면 활용법을 이 책에 담은 것이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의 제목을 '챗 GPT는 목회자에게 탁월한 도우미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철학적 사유와 인문학적 고뇌를 기대하지는 말자. 다만 chat GPT를 어떻게 활용하여 목회에 적용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책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두절미하고 저자가 소개하는 chat GPT 활용법 몇 가지를 찾아보자.
1장은 ChatGPT 란 무엇인가를 다룬다. 요약하면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인간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목적이다. chat GPT의 발전에 대해 찬반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저자는 목회자 먼저 관심을 보이고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어차피 chat GPT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활용할 것이기에 목회자는 ' chat GPT의 올바른 사용 방법을 안내하고, 이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설정'(23쪽) 해야 하기 때문이다.
ChatGPT의 전체 명칭은 뭘까? ChatGPT에 직접 물어보았다. ChatGPT의 답은 이렇다.
ChatGPT의 풀 네임은 "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입니다.
넌 누가 개발한 거니?
저는 OpenAI에서 개발된 GPT-3.5 언어 모델 기반의 챗봇입니다. OpenAI(OpenAI LP)는 인공 지능(AI) 연구와 개발을 수행하는 기업으로, GPT-3.5 모델은 그들의 연구 중 하나로 개발되었습니다. OpenAI는 공개적으로 AI 연구와 기술을 공유하며 인공지능의 윤리와 안전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조직 중 하나입니다.
챗 GPT는 ChatGPT만 존재하지 않고, 현재 다양한 종류의 챗봇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현재 ChatGPT와 가장 강력한 대항마는 구글 Bard이다. ChatGPT가 2022년 이전이 데이타를 기반으로 응답한다면 Goolg Bard는 거의 실시간 검색을 기반으로 단변이 가능하다. 물론 색인이 완성된 데이터만 가능하다.
ChatGPT는 질문에 따라 다른 스타일로 답을 준다. 실제로 예를 들어보자. 아래의 글은 ChatGPT에게 실제 묻고 ChatGPT가 답한 글이다.
질문 / 성경은 몇 권인가요?
성경은 기독교에서 사용되는 종교적 텍스트로, 주로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집니다. 성경은 총 6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약(Old Testament):창세기(Genesis)부터 말라기(Malachi)까지 총 39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약(New Testament):마태복음(Matthew)부터 요한계시록(Revelation)까지 총 27권이 있습니다. 이렇게 총 66권으로 구성된 성경은 기독교 신자들에게 중요한 신앙 문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종교와 교파에 따라 성경의 구성이 다를 수 있습니다.
질문 / 기독교인과 유대인 성경의 차이를 중심으로 성경이 몇 권인지 알려 주세요.
기독교와 유대교의 성경은 기본적으로 비슷하지만 일부 차이가 있습니다. 주로 유대교의 성경은 기독교 성경의 구약 부분과 대응되는데, 몇몇 서적의 배열이나 명칭에 차이가 있습니다. 1. 기독교 성경 (구약): - 기독교 성경의 구약은 39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유대교의 성경 구성과 동일합니다. 주요 서적에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등이 포함됩니다. 2. 유대교 성경 (히브리 성경 또는 타나크): - 유대교의 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여진 타나크(Tanakh)이며, 기독교의 구약과 대응됩니다. 타나크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 Torah (법):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기독교의 구약에서는 "법전" 또는 "모세 서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 Nevi'im (선지자들): 여러 선지자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Ketuvim (글): 시편, 잠언, 예레미야 서, 다니엘 등이 포함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구약의 일부 서적의 배열이나 명칭에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유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답을 주고 있다. 만약인 유대인 성경이 있다는 알지 못한다면 그러한 질문을 하지 못할 것이고, 그럼 결국 ChatGPT도 유대인 성경에 대해 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ChatGPT의 핵심은 질문이다. 저자는 ChatGPT를 '목회비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대형교회는 담임목사를 위한 비서목사가 따로 있다. 담임 목사 자신이 설교를 준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설교의 80% 이상은 비서 목사가 준비하고, 담임목사는 비서목사가 준비한 설교를 받아 일부만 수정하고 자산의 말투로 바꾸는 작업만 한다. 대형교회만 누리는 특권이다. 하지만 이제 중소형 교회 목사는 물론이고, 개척교회 목사와 전도사도 얼마든지 대형교회 목사와 맞먹는 비서를 두게 된다.
문제는 질문이다. 저자는 4장에서 챗 GPT가 가져온 지식 획득의 변화에서 가장 먼저 '검색이 아니라 질문이다'라고 말한다.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을 주기 때문이다.
질문 중심의 접근법은 기존의 검색 방식에서 대화형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화형 방식은 검색 엔진에 일방향으로 정보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나 친구에게 질문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게 하고, 사용자에게 더욱 친근한 경험을 제공할 것입니다. (43쪽)
ChatGPT의 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보다 월등이 탁월하다.
질문 / 요한복음 1장에 나타난 logos는 어떤 존재인지 요한복음 전체를 배경으로 설명해 주세요.
답변
요한복음 1장에서 나오는 "logos"는 그리스어로 "말" 또는 "언어"를 나타냅니다. 이 개념은 특히 요한복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제시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logos"는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1:1-3 (한글 성경):
1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2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만물과 함께 계셨다. 3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가 없는 것이 없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logos"로 설명한 부분으로,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하며 창조의 주체로서 존재하며, 인간과 실재 세계와 연결된다는 개념을 나타냅니다.
요한복음 1:14 (한글 성경):
14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을 보았다.
여기서 말씀이 육체가 되어 거하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으로서 육체를 취하고 이 세상에 오셨음을 나타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으로 오는 예수 그리스도로써 현존하였다는 중요한 신앙적 개념이 전해집니다.
"Logos"는 그리스어 세계에서는 이성, 지혜, 의미 등과 관련된 다양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다는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답변인가? 엄청 공부하지 않는 목사를 뛰어넘는 신학적 내용까지 답하고 있다.
질문 / 요한복은 1장의 logos를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란 주제로 설교 싶은데, 설교 개요와 간략한 설교문을 적어줘
답변
설교 개요: "요한복음 1장의 Logos: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1. 소개:
요한복음 1장에서 나오는 "Logos"는 그리스어로 "말씀"이나 "언어"를 의미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Logos의 의미: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라는 문구는 창조의 시작을 언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의 주체로서 존재했음을 강조한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이셨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하게 신성하다는 사실을 전한다.
3. Logos의 육신화: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화를 나타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중에 함께 하시게 되었다는 큰 은총을 나타낸다.
4. 임마누엘의 의미: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중에 계셔서 우리와 소통하며 구원의 계획을 이루고 계시다는 참된 소식이다.
5.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동행하며 우리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며 헤아려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에서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써 우리에게 희망과 안정을 주십니다.
설교문 일부:
"여러분,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는 창조의 주체로서 존재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라고 말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큰 은총 속에 우리와 함께하려고 하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중에 계셔서 우리의 모든 삶을 통찰하며, 우리와 소통하며, 우리의 고통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는 우리가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풍성한 은총입니다." 이러한 설교는 "Logos"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고자 하셨는지를 강조하여 교인들에게 신앙생활에서의 안정과 소망을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어떤가? 저자는 이러한 활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성경 공부 만들기 뿐 아니라 AI 이미지 만들기 등도 소개하고 있다. ChatGPT에 활용에 관한 많은 책들이 있지만 이 책은 목화자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존 베일리는 스코틀랜든 신학자로 학문과 신앙을 조화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이곳에 올려진 기도문들은 존 베일이의 저작물에서 발췌하여 정리한 것이다. 아침과 저녁 기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선별하였다. 이 기도문은 개인의 기도룰 대신할 수 없지만 천천히 읽고 묵상함으로 더 깊은 기도의 세계로 나아가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
제목 /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할 수 있는 존 베일리의 매일기도
원제 / A Drary of Private Prayer
저자 / 존 베일리 John Baillie
역자 / 박대영
출판사 / 성서유니온선교회
출판 연도 / 2011-10-17 초판 2쇄
가격 / 12,000원
개인적으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기도문이다. 학문적 소양과 신앙적 양심, 성경적 언어가 충분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식상한 언어를 탈피하여 일상적 소재를 통해 기도하면서도 문학적 풍성함이 스며 있다. 아침과 저녁 기도로 나누어져 있어서 한 달 동안 아침과 저녁 기도문을 읽음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양시킨다.
내 영혼의 하나님 오늘 저의 첫 생각이 당신이게 하시고, 오늘 저의 첫 열망이 당신을 향한 예배이게 하시고, 오늘 저의 첫 말이 당신의 이름이게 하시고, 오늘 저의 첫 행동이 당신 앞에 무릎 꿇는 기도이게 하소서. (1일 아침 기도 중에서)
기도는 멀리 있지 않다. 천상의 언어를 사용하거나, 수사학에 통달한 변론가의 언어도 아니다. 그냥 우리가 느끼고 체험하고 사용하는 언어다. 하지만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순간 은혜가 되고, 감동이 된다. 평이한 소원을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어둠이 찾아오고 잠이 시작되는 이 시간에 다시 당신을 생각합니다. --- 결코 잠들지 않으시는 주님의 시선 아래 제거 거할 것을 알기에 기뻐합니다. 오 아버지, 이제 제 몸과 연혼을 주의 돌보시는 품에 맡겨드립니다. (1일 저녁 기도 중에서)
기도는 마음 깊은 곳의 갈망을 아뢰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훈련, 또는 시간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일리의 기도는 다시 하나님 앞에 기도자를 독대(獨對)시킨다.
제 모든 죄악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속 가장 은밀한 곳에서 저와 만나 말씀하시고 저와 교제하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3일 저녁 기도 중에서)
잔잔하지만 세밀한 존 베일리의 기도문은 모든 신자들을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은 죄인으로 소개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이 필요하다. 그는 하나님께 진실한 도움을 구한다.
보잘것없고 하찮은 이기심이나 짐승의 정욕과 탐욕이 다스리는 외로운 제국에 저를 내버려 두지 마옵시고 당신의 영원한 상속자로 불러 주옵소서. 제 마음의 문을 두드리심으로 제가 주님의 임재를 기다릴 수 있도록 경고하여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4일 아침 기도 중에서)
누가 하나님 없이 살 수 있겠는가? 누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당당하고 담대하게 나아간다.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목욕할 필요는 없으니 매일 해가 기울면 정결하기 위하여 손과 발을 씻어야 한다. 베일리는 우리를 손과 발을 씻을 수도 있도록 인도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에.
오 하나님, 제 형제 티끌을 보기 전에 먼저 제 눈의 들보를 제거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잃더라도 제 영혼만은 잃지 않으며 살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8일 아침 기도 중에서)
기도문을 읽고 싶으면 절로 하나님께 무릎 꿇게 한다. 탁하고 어둔 영혼이 말갛게 씻겨지고, 진리의 빛이 내 영혼을 비추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기도문을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