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23편 설교, 전체 개요
주께서 내 목자시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린아이는 엄마 손을 놓치면 울음을 터뜨리고, 청년은 스승의 말 한마디에 인생의 방향을 정하기도 합니다. 인생은 동행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행자는 누구입니까? 시편 23편은 그 질문에 단호하고도 따뜻하게, 영원히 변치 않는 대답을 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고백은 단지 다윗의 노래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품어야 할, 아니 품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의 고백입니다.
이 짧은 여섯 절 안에, 인생의 고비마다 붙잡아야 할 진리들이 숨 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23편을 한 절씩 나누기보다, 그 전체를 하나의 교향곡처럼 들으며, 이 노래가 말하는 큰 숲을 함께 걸어보려 합니다. 성경신학적으로도 시편 23편은 단순한 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길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성막의 길'이고, '목자의 인도'이며, '메시아의 그림자'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
성도 여러분, 목자라는 단어 안에는 단지 직업 이상의 상징이 담겨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목자는 보호자요, 길잡이였으며, 무엇보다 생명과 생명을 잇는 연결고리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고백은 단순히 신앙의 수식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생 전체의 방향과 기대, 그리고 안전의 근원을 하나님께 맡긴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절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신앙의 충족입니다.
여기서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결핍이 제거된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결핍조차 하나님의 손안에서 의미로 변화되는 상태입니다. 마치 밤하늘의 어둠이 별을 드러내듯이, 때로 우리는 부족함 속에서 하나님의 충만을 더 깊이 경험합니다. 그래서 이 고백은 단지 평안할 때의 감사가 아니라, 전 생애를 아우르는 ‘신앙의 포기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중심이니, 더 이상 나를 위해 내 마음대로 설계하지 않겠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2)
이제 시편은 목자의 손에 이끌린 양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푸른 풀밭은 단지 배부름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을 위한 공간입니다.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 이 두 곳은 광야를 살아가는 자에게 생명과 회복의 두 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맹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눕게 하십니다. 즉, 쉬게 하십니다. 양은 매우 연약한 존재라서, 아무 데서나 눕지 않습니다. 안전하다고 느낄 때만 눕습니다.
하나님께서 누이신다는 건, 단지 공간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안전하게 만드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삶이 어디서 쉼을 얻느냐에 따라 그 영혼의 결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고요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그 물은 단순한 식수나 휴식의 상징이 아니라, ‘성령의 강물’이며 ‘생수의 샘’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바로 그 물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한 참된 안식은 세상의 소음과 비교할 수 없는 깊은 평안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우리 인생은 때때로 방향을 잃고 맙니다. 영혼의 기력이 다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털썩 주저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여기서 ‘소생’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다시 숨을 불어넣는다’는 뜻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단지 회복시키는 분이 아니라, 새로 생명을 시작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이름을 위하여"(시 23:3)입니다. 이는 단지 명예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지쳐 있을 때도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이유는, 우리의 능력이나 의로움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 곧 언약의 이름 때문입니다. 그 이름은 우리를 단순히 이끌고 가는 이름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이름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 23:4)
이제 시편은 가장 깊은 어둠의 지점으로 나아갑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시 23:4)는 단지 죽음의 그림자가 아니라, 인생의 모든 위기와 절망의 순간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 부분이 바로 시편 23편의 중심이자 심장입니다. 여기에는 인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이유는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동행이 변함없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여전히 짙고, 골짜기는 여전히 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 하나로 그 모든 상황이 변모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어둠을 이기게 하고,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피워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는 말은, 하나님의 보호와 징계, 곧 사랑의 양날을 의미합니다. 지팡이는 인도하고, 막대기는 보호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붙드시는 목자이십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시 23:5)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반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시편은 더 이상 들판이 아닌 식탁으로 옮겨옵니다. ‘상’이라는 표현은 단지 음식이 차려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승리와 환대, 그리고 잔치의 상징입니다. 그것도 ‘원수의 목전에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망치는 와중에도,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아니라, 대적의 눈앞에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상 위에 기름을 부으십니다. 이것은 단지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기름 부으시는 제사장적 환대의 표현입니다. 머리에 부어진 기름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되었다는 거룩한 선언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 23:6)
마지막 절은 이 모든 시편의 고백을 마무리하는 인생의 종착지입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 그것은 단지 천국에 간다는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걸어가는 모든 길은 결국 그분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편 23편은 단순한 위로의 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삶의 항해 지도’입니다. 이 지도는 들판도 지나고, 골짜기도 지나고, 식탁도 거쳐서, 결국 하나님의 집으로 이끄는 경로입니다. 우리는 이 여정에서 목자를 의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진짜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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