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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 설교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책익는계절 202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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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여정은 언제나 평탄한 들판만을 걷는 길이 아닙니다. 인생은 종종 갑작스레 깊고 어두운 골짜기를 우리 앞에 펼쳐놓습니다. 광야의 햇살 뒤에는 그늘이 따르듯,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의 은혜 뒤에는 때때로 음침한 골짜기가 찾아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바로 그 어둠의 계곡 속에서도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임재의 약속입니다. 시편 23편 4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이 말씀은 시편 23편 전체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는 ‘그가 나를…’이라는 3인칭 서술로 이어졌던 고백이 이 구절에서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2인칭 고백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설명되는 분이 아니라, 직접 고백되고 호흡되는 인격이 됩니다. 이건 단지 문장의 구조적 변화가 아니라, 신앙의 지층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인생의 어둠 속에서, 신앙은 개념이 아니라 동행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인생의 가장 깊은 어둠 (시 23:4)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츠알마웨트’인데요, 이 단어는 ‘죽음의 그늘’, ‘그림자 같은 어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가까운 공포, 죽음만큼이나 깊은 절망의 시간을 말합니다. 마치 사막의 협곡처럼 햇빛이 닿지 않는, 해가 중천에 떠 있어도 어둠뿐인 그 공간, 그것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골짜기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구간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외로움이, 청년에게는 실패가, 장년에게는 질병과 불안이, 노년에게는 죽음과 고독이 골짜기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한 번만 걷는 길이 아닙니다. 신앙인이라도 이 골짜기를 여러 번 지나갑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앞에서 겟세마네 골짜기를 지나셨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걸어야 할 믿음의 고갯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골짜기를 우리가 ‘지나간다’는 점입니다. 시편 기자는 “걸어 들어간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닐지라도”라고 했습니다. 이건 거주가 아닙니다. 통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절망의 땅에 뿌리내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반드시 지나갑니다. 이것이 신앙의 확신입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임재의 확신입니다 (시 23:4)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성도 여러분, 이 구절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인지요. 다윗은 어두운 골짜기를 피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어둠 가운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이건 단지 용기에서 비롯된 결의가 아닙니다. 이건 임재에 대한 확신에서 오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목자로서 수많은 골짜기를 지나온 사람입니다. 그는 양들과 함께 짐승의 위험을 피해 다녔고, 사울의 추격 속에서 바위와 그늘을 오갔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기억 속에서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골짜기에도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어둠에도 오시며, 절망의 끝에서도 함께하시며, 우리의 두려움과 함께 그곳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시점을 바꿉니다. ‘그가’라고 말하던 그가 이제 ‘주께서’라고 말합니다. 3인칭에서 2인칭으로 바뀐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멀리 계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눈앞에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빛 가운데서 설명되지만, 어둠 가운데서 체험됩니다. 하나님은 고통의 시간에 더욱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골짜기의 하나님은 설명보다 동행을 선택하시는 분이십니다.

지팡이와 막대기, 하나님의 양손 (시 23:4)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이 두 개의 도구는 고대 목자들의 상징적인 도구입니다. 지팡이는 인도하고, 막대기는 보호합니다. 지팡이는 구부러진 나무로, 양을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인도할 때 사용되고, 막대기는 곧은 회초리처럼 짐승을 쫓거나 양을 위협하는 위험을 막는 데 쓰였습니다.

즉, 지팡이는 사랑의 도구이고, 막대기는 권능의 도구입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장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지 부드럽게만 인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때로는 막대기로 경고하시고, 위험을 막으시며,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양손으로 우리를 다루십니다. 그 손은 다정하면서도 강하고, 인자하면서도 엄중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들고 있다는 이 확신이야말로,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우리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지팡이만 드신 분이 아니라, 막대기도 드신 분입니다. 그분은 인도하시되 보호하시고, 돌보시되 싸우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완전한 책임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분의 손 안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골짜기 신앙은 산 위에서 얻을 수 없는 깊이를 선물합니다 (시 23:4)

사랑하는 여러분, 골짜기는 피하고 싶은 자리입니다. 누구도 고난을 자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신앙의 깊이는 골짜기에서 자랍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들판보다 계곡에서, 낮보다 밤에서, 말보다 침묵에서 피어납니다.

시편 23편은 처음부터 들판에서 시작하지만, 그 정점은 골짜기에서 찾아옵니다. 하나님과의 거리, 임재의 농도, 고백의 진심이 가장 깊이 우러나는 곳은 어둠입니다. 우리가 가장 연약할 때, 하나님은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가 무릎 꿇을 때, 하나님은 우리 품에 임하십니다.

다윗은 골짜기에서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보았고, 거기서 하나님의 동행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이 길어질수록, 그 안에서 우리는 더 깊은 임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23편 4절은 우리 신앙의 밤을 위한 말씀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이 말씀은 단지 위로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선언입니다. 골짜기에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어둠 속에도 임재가 있다는, 절망 속에도 소망이 있다는 고백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어떤 골짜기를 지나고 있든, 주님은 그 골짜기 안에 이미 계십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여러분을 안위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싸우시고, 여러분을 위해 함께 걷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의 삶 속 골짜기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불꽃처럼 타오르기를, 어둠 속에서도 그 손을 놓치지 않기를, 그리고 마침내 그 길 끝에서 하나님의 집으로 나아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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