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편 설교, 3절 소생시키는 여호와 하나님
길 잃은 영혼에 숨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길을 걷는다는 건 결국 ‘누가 내 길을 이끄시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직선이 아닙니다. 굽이치고, 자주 멈추고, 때로는 방향을 잃어버리는 여정입니다. 그 여정 가운데, 우리가 어디서 다시 숨을 쉴 수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씀이 바로 오늘 시편 23편 3절의 고백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 이 한 절은 마치 짧은 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구원과 인도, 회복과 목적이라는 복음의 핵심이 녹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걸어가 보려 합니다.
영혼의 숨결을 되살리시는 하나님 (시 23:3)
성도 여러분, ‘소생시키신다’는 이 표현은 히브리어로 ‘슈브’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단순히 회복시키다 정도가 아니라 ‘돌아오게 하다’, ‘되돌리다’, ‘회개하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시 23:3)는 말은 단지 위로해 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길을 잃은 영혼을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는다’는 아주 능동적인 표현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방황합니다. 어떤 때는 죄로, 어떤 때는 상처로, 또 어떤 때는 절망으로 인해 제자리를 잃어버리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찾아오셔서 단지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제자리로’ 돌려놓으시는 분입니다. 마치 숨이 끊어져 가는 자에게 다시 생기를 불어넣듯이, 하나님은 우리 안에 다시 호흡하게 하십니다. 영혼의 숨을 다시 열게 하십니다. 이건 단순한 회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활의 언어입니다.
히브리 시편은 여기서 아주 시적으로, 하지만 명확하게 하나님의 손길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영혼을 수선하는 재봉사처럼 바느질하시는 분이 아니라, 완전히 무너진 심령을 새롭게 빚어내시는 창조주로서 등장하십니다. 창세기의 생기(창 2:7)가 다시 우리 속에 불어넣어지는 장면과도 같은 회복입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중심 (시 23:3)
이 구절에서 우리 신앙의 뿌리를 꿰뚫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시 23:3). 이건 단지 문장 구조의 장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왜 인도하시는지를 알려주는 결정적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착해서, 똑똑해서, 자격이 있어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곧 그분의 성품과 언약과 신실하심 때문에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이 표현은 모세의 중보기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범죄했을 때, 모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의 큰 이름이 이방 사람들 중에서 욕을 당할까 하여 그들을 멸하지 마소서”(출 32:12 참조).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명예요, 존재요, 신실함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곧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은혜입니까. 우리는 자주 자격을 잃습니다. 우리는 성실하지 못하고, 중심이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다시 세우시고, 다시 부르시고, 다시 사용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를 붙잡고 가는 길, 이것이 신자의 안식이며 확신입니다.
의의 길, 그것은 평탄이 아니라 ‘목자의 방향’입니다 (시 23:3)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끝내지 않으십니다. 그 다음이 있습니다. 바로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시 23:3). 여기서 ‘의’는 단지 도덕적인 ‘옳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체덱’은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의의 길’은 올바른 관계 안에서 걷는 길이며, 하나님이 정하신 방향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종종 ‘의로운 길’이란 말에 착각을 가집니다. 그 길은 평탄할 것이고, 순탄할 것이라고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의의 길은 평탄하기보다 거룩한 길입니다. 그 길은 때로 가시밭이고, 때로 눈물의 골짜기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방향이 바릅니다. 그 길은 종착지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길을 가는 사람은 흔들릴지언정, 돌아가지 않습니다. 넘어질지언정, 무너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도 수많은 갈림길 앞에 서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의 욕망은 방향을 흐립니다. 그러나 목자 되신 하나님은 ‘의의 길’로, 곧 자기 이름을 위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 길은 유일한 길이며, 살아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 길은 ‘목자의 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 하셨던 그 말씀도, 결국 이 시편의 의의 길을 완성하신 선언이었습니다.
회복은 고립이 아니라 동행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시 23:3)
시편 23편의 구조를 보면, 이 3절은 앞의 1, 2절과 뒤의 4절을 이어주는 연결다리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앞에서는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에서의 쉼이 강조되고, 뒤에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중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생’시키시고 ‘인도’하신다는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이건 굉장히 의미 있는 흐름입니다.
하나님은 회복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회복 후엔 반드시 ‘함께 걸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힘을 얻었다면, 이제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혼자의 길이 아니라, 목자와 함께 걷는 동행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우리를 파송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회복은 단지 감정적 위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새 길을 걷게 되는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여러분, 신앙은 혼자 묵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신앙은 공동체 속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 속에서 완성됩니다. 우리가 받은 회복이 진짜인지 확인하는 자리는, 결국 우리가 다시 걸어 나가는 ‘의의 길’ 위에서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중심엔 언제나 ‘목자 되신 주님’이 계십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시편 23편 3절의 말씀은 단지 위로의 언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죄로, 상처로, 절망으로 인해 무너진 우리에게 다시 숨을 불어넣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소생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은혜의 열매입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시는 그 이름, 그 이름이 오늘도 우리를 살립니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우리는 ‘의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니지만, 분명한 길입니다. 그 길은 사람의 시선을 따라 걷는 길이 아니라, 목자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 각자의 삶에서 다시 숨을 내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회복의 자리를 지나, 목자 되신 주님을 따라 의의 길을 걸어가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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