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글쓰기 2, 글쓰기를 배우라

Book Column|2024. 1. 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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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 글쓰기 2, 글쓰기를 배우라

 

들어가면서

 

지난 <목회자와 글쓰기 1, 글쓰기를 못하는 이유들>에서 필자는 굉장히 비판적으로 목사들을 보았다.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비판도 받았지만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비판하기 위해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다. 정말 많은 목사들이 글쓰기를 못한다. 필자가 말하는 글쓰기는 뛰어난 수필가나 소설가 등의 능력을 갖추라는 말이 아니다. 글을 읽으면 쉽게 이해가 되고, 명확한 전달이 가능한 수준이면 된다. 거기에 좀 더 문학적인 요소가 가미되면 더할 나위가 없다. 또한 기본적인 문법이나 용어 사용법 등을 익힐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쓴 '목회칼럼'을 읽어보면 기본 문법을 물론이고, 어색한 문체와 기독교 목사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희한한 용어와 어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목사들이 써 놓은 칼럼을 직접 읽어 보라. 필자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글쓰기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숨이 턱턱 막힐 것이다. 그럼에도 오직 '목사'라는 이유 때문에 누군가에게 배울 생각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이 엄청 글을 잘 쓴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번 글은 초반부터 비판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목사와 글쓰기를 생각하면 그냥 비판조로 흘러간다. 이해하시라 답답해서 그러는 것이다.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 얼마나 목회자의 글쓰기를 다루고, 실제적인 내용을 다룰 수 알 수 없으나 기회가 된다면 기본적을 목회칼럼이나 다양한 글쓰기 기법들을 소개할 생각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목사는 글쓰기를 배워야 한다. 

 

결론이자 방법이다. 목사가 글쓰기는 못하는 것을 합리화 해서는 안 된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목사는 writer이다. 글을 쓰지 않는 목사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를 배워야 한다. 글쓰기는 말로 하는 설교와 상당히 다르다. 설교가 청중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면 글쓰기는 자기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물론 글도 궁극적으로 독자를 향한다는 점에서 큰 범주에서는 동일한 방향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 과정과 방법이 다른 것이다.

 

글쓰기는 일기로부터 시작된다.

 

일기는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이다. 모든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기에 생각을 글로 바꾸는 끊임없는 훈련이다. 그렇기에 일기를 잘 쓰는 사람은 글쓰기를 잘할 확률이 매우 높다. 또한 일기는 사소한 것에 주목하고, 자신의 사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몰입의 효과가 크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일기를 쓰지 않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목사에게 일기는 일종의 훈련이자 묵상이다. 자신의 일을 되돌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바라보는 행위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복잡한 생각은 정리하여 더 이상 생각이 복잡해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글을 쓰는 것 만으로 생각이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후에 이곳에 글쓰기 방법론에 대해 논하게 된다면 일기 쓰기에 대해 더 많은 설명이 있을 것이다.

 

성경을 스토리텔링하라.

 

목사에게 다양한 소양이 있으면 좋지만 기본은 성경이다. 성경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줄아야 한다. 즉 창작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의 전체 흐름을 요약하고,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사건보다는 인물 중심의 성경 읽기를 통해 인물의 성경과 생각들을 읽어내고 분석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라.

 

목사는 leader인 동시에 reader이다. 무엇보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 다음은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류의 역사와 철학에 개요는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역사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 한다. 또한 중요한 소설을 읽고 이해하고, 응용하는 수준이 되도록 충분히 인문학 서적을 읽어야 한다. 전문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인문학자가 될 필요도 없다. 되면 더욱 좋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끊임없는 글쓰기 훈련을 하라.

시간이 나는 대로 글쓰기 훈련을 해야 한다. 설교처럼 쓰지 말고 일반 글쓰기를 하라는 말이다. 홈페이지가 있다면 목사 칼럼란을 만들어 꾸준히 글을 써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주보에 목회자칼럼을 넣어 매주 넣는 것도 좋다. 처음부터 잘 쓸 수는 없다.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 꾸준한 훈련이야 말로 글쓰기를 잘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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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 글쓰기, 글쓰기를 못하는 이유들

Book Column|2023. 12. 3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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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글쓰기 1

 

목회자는 학자이다. 안타깝게 원론적인 이야기다. 목회자이면서 일 년에 열 권 이상 책을 읽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국내에 수십 만 명의 목사들이 있지만 일 년에 열 권 이상 읽는 목사들이 몇이나 될까? 나의 주변의 목사들을 전체 통계로 본다면 20%도 되지 않는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대부분 담임 목사들은 도서비로 한 달에 얼마의 돈을 따로 받는다. 하지만 책이나 그와 비슷한 일로 쓰지 않고 그냥 한 통장 안에 넣고 생활비로 쓰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사 먹는 일로 쓰는 일이 태반이다. 매우 잘못된 관행이다. 그럼에도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다. 목사는 반드시 도서비로 돈을 받는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교회도 돈을 주지 말고, 서점과 연계하거나, 영수증을 첨부하여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회계부가 있는 것이다.

 

목사는 좋든 싫은 writer이다. 노력하면 anthor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목사치고 글 잘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이다. 정말 엉터리가 대부분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목사가 있다면 기분이 나쁠지 모르지만 엄연한 사실이고, 개선의 여지도 없다.

 

목사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가장 많이 쓰고,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은 '설교' 때문이다. 개척교회 목사나 소형 교회 목사는 혼자서 주일오전, 주일 오후, 새벽, 수요일, 심지어 금요일까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심방이나 다른 외부 일로 불가피하게 설교를 해야 한다. 설교를 하기 위해 글을 써야 하고, 다듬어야 한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사는데도 글쓰기는 조금도 늘지 않는다.

 

한 때 노회 주일학교과 주일학교 연합회 실행위원으로 일하면서 여러 목사님들의 글을 받아 회지에 싣거나 주일학교 소식지에 넣기도 한다. 그런데 목사들이 보내온 글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글쓰기의 최소한의 기본도 없는 이들이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이 아니라 설교다. 그냥 모든 사람을 가르치려는 태도로 일관되어 있다. 또 하나는 1000자 정도에 맞추라고 해도 맞추질 못한다. 거의 2천 자는 기본이고 3천 자가 넘는 이들이 많다. 1000 전후로 맞추려면 글을 완전히 새로 써야 한다. 어쩔 때는 대략적인 주제만 잡고 내가 새로 쓰는 경우가 허다했다. 기분 좋아하는 목사도 있고, 자신의 글을 훼손? 했다고 기분 나빠하는 목사도 많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근본적은 몇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본다. 먼저 목사라는 거만함 때문이다. 서구의 목사들은 수평적 개념이 강하다. 하지만 한국의 목사는 한 교회를 대표하는 정도를 떠나 왕에 가깝다. 자신의 신성한 진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무조건 내가 옳다'라고 주장하는 성향이 매우 매우 매우 강하다. 이러한 태도를 버리고 자신의 무지와 무식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무지를 아는 겸손은 그것이 능력이다.

 

두 번째는 게으르다. 그들의 목회나 생활이 게으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중의 많은 수의 목사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정신없이 바쁜 목사들도 많다. 그럼에도 자신의 writer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해 보지 않거나 개선의 의지 자체가 없다. 글쓰기는 배워야 한다. 배움은 얼마든지 스스로 가능하고, 인터넷이나 책, 또는 실제 글쓰기 강좌에 가서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목사들은 배우지 않는다. 거만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만이란 문제를 조금 고민해 봐야 한다. 왜 목사들은 거만할까? 진리를 다루기 때문이다. 진리를 읽고, 진리를 설교하기 때문이다. 누가? 목사들이.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목사들에게 너무나 강하다. 성경강해나, 설교를 자신의 일상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적용하는 것이 문제다. 예수님이 진리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정당이 진리는 아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지만, 자신이 좋아는 음식이 유일한 진리는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목사들은 진리를 일상에 욱여넣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거만해진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는 매우 편협적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목사들은 한결같이 답답하고 소통이 힘들다. 좋은 목사들도 많지만, 그들도 매우 편협적이다. 왜 그럴까? 그것도 사실은 진리를 다루기 때문이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진리의 문제로 모든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도 무오한 진리처럼 생각하는 목사들이 많다. 평생 목사만 하는 사람들은 사람과의 소통이 매우 제약되어 있고, 편협적이다. 예전에는 참 좋아했지만 지금은 극혐 하는 단어가 '일념목양' 또는 '일념목회'이다. 평생 목회를 하면 주를 위해 헌신했다는 미사여구는 그가 일반 교인들의 사정을 조금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목사들은 종종 목회를 그만두고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편의점 알바도하고, 택배도 하고, 회사에 들어가 말단으로 근무도 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그러한 일을 하면서 세상이 얼마나 험악하고 무서운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목회가 얼만 편하고, 쉬운가를 알게 된다. 물론 목사들의 말할 수 없는 애로를 어찌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목사는 편하다. 아 사실을 목사들은 잊으면 안 된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글쓰기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가 위의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지도를 해보면, 약간의 훈련을 받고도 많은 개선을 이루는 목사들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쓰기를 배우려는 목사들은 이미 평소에도 많은 책을 읽고 글쓰기 훈련을 하는 이들이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는 주님의 말씀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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