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글쓰기 2, 글쓰기를 배우라

Book Column|2024. 1. 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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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 글쓰기 2, 글쓰기를 배우라

 

들어가면서

 

지난 <목회자와 글쓰기 1, 글쓰기를 못하는 이유들>에서 필자는 굉장히 비판적으로 목사들을 보았다.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비판도 받았지만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비판하기 위해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다. 정말 많은 목사들이 글쓰기를 못한다. 필자가 말하는 글쓰기는 뛰어난 수필가나 소설가 등의 능력을 갖추라는 말이 아니다. 글을 읽으면 쉽게 이해가 되고, 명확한 전달이 가능한 수준이면 된다. 거기에 좀 더 문학적인 요소가 가미되면 더할 나위가 없다. 또한 기본적인 문법이나 용어 사용법 등을 익힐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쓴 '목회칼럼'을 읽어보면 기본 문법을 물론이고, 어색한 문체와 기독교 목사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희한한 용어와 어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목사들이 써 놓은 칼럼을 직접 읽어 보라. 필자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글쓰기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숨이 턱턱 막힐 것이다. 그럼에도 오직 '목사'라는 이유 때문에 누군가에게 배울 생각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이 엄청 글을 잘 쓴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번 글은 초반부터 비판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목사와 글쓰기를 생각하면 그냥 비판조로 흘러간다. 이해하시라 답답해서 그러는 것이다.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 얼마나 목회자의 글쓰기를 다루고, 실제적인 내용을 다룰 수 알 수 없으나 기회가 된다면 기본적을 목회칼럼이나 다양한 글쓰기 기법들을 소개할 생각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목사는 글쓰기를 배워야 한다. 

 

결론이자 방법이다. 목사가 글쓰기는 못하는 것을 합리화 해서는 안 된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목사는 writer이다. 글을 쓰지 않는 목사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를 배워야 한다. 글쓰기는 말로 하는 설교와 상당히 다르다. 설교가 청중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면 글쓰기는 자기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물론 글도 궁극적으로 독자를 향한다는 점에서 큰 범주에서는 동일한 방향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 과정과 방법이 다른 것이다.

 

글쓰기는 일기로부터 시작된다.

 

일기는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이다. 모든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기에 생각을 글로 바꾸는 끊임없는 훈련이다. 그렇기에 일기를 잘 쓰는 사람은 글쓰기를 잘할 확률이 매우 높다. 또한 일기는 사소한 것에 주목하고, 자신의 사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몰입의 효과가 크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일기를 쓰지 않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목사에게 일기는 일종의 훈련이자 묵상이다. 자신의 일을 되돌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바라보는 행위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복잡한 생각은 정리하여 더 이상 생각이 복잡해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글을 쓰는 것 만으로 생각이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후에 이곳에 글쓰기 방법론에 대해 논하게 된다면 일기 쓰기에 대해 더 많은 설명이 있을 것이다.

 

성경을 스토리텔링하라.

 

목사에게 다양한 소양이 있으면 좋지만 기본은 성경이다. 성경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줄아야 한다. 즉 창작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의 전체 흐름을 요약하고,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사건보다는 인물 중심의 성경 읽기를 통해 인물의 성경과 생각들을 읽어내고 분석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라.

 

목사는 leader인 동시에 reader이다. 무엇보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 다음은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류의 역사와 철학에 개요는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역사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 한다. 또한 중요한 소설을 읽고 이해하고, 응용하는 수준이 되도록 충분히 인문학 서적을 읽어야 한다. 전문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인문학자가 될 필요도 없다. 되면 더욱 좋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끊임없는 글쓰기 훈련을 하라.

시간이 나는 대로 글쓰기 훈련을 해야 한다. 설교처럼 쓰지 말고 일반 글쓰기를 하라는 말이다. 홈페이지가 있다면 목사 칼럼란을 만들어 꾸준히 글을 써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주보에 목회자칼럼을 넣어 매주 넣는 것도 좋다. 처음부터 잘 쓸 수는 없다.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 꾸준한 훈련이야 말로 글쓰기를 잘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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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 글쓰기, 글쓰기를 못하는 이유들

Book Column|2023. 12. 3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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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글쓰기 1

 

목회자는 학자이다. 안타깝게 원론적인 이야기다. 목회자이면서 일 년에 열 권 이상 책을 읽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국내에 수십 만 명의 목사들이 있지만 일 년에 열 권 이상 읽는 목사들이 몇이나 될까? 나의 주변의 목사들을 전체 통계로 본다면 20%도 되지 않는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대부분 담임 목사들은 도서비로 한 달에 얼마의 돈을 따로 받는다. 하지만 책이나 그와 비슷한 일로 쓰지 않고 그냥 한 통장 안에 넣고 생활비로 쓰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사 먹는 일로 쓰는 일이 태반이다. 매우 잘못된 관행이다. 그럼에도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다. 목사는 반드시 도서비로 돈을 받는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교회도 돈을 주지 말고, 서점과 연계하거나, 영수증을 첨부하여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회계부가 있는 것이다.

 

목사는 좋든 싫은 writer이다. 노력하면 anthor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목사치고 글 잘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이다. 정말 엉터리가 대부분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목사가 있다면 기분이 나쁠지 모르지만 엄연한 사실이고, 개선의 여지도 없다.

 

목사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가장 많이 쓰고,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은 '설교' 때문이다. 개척교회 목사나 소형 교회 목사는 혼자서 주일오전, 주일 오후, 새벽, 수요일, 심지어 금요일까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심방이나 다른 외부 일로 불가피하게 설교를 해야 한다. 설교를 하기 위해 글을 써야 하고, 다듬어야 한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사는데도 글쓰기는 조금도 늘지 않는다.

 

한 때 노회 주일학교과 주일학교 연합회 실행위원으로 일하면서 여러 목사님들의 글을 받아 회지에 싣거나 주일학교 소식지에 넣기도 한다. 그런데 목사들이 보내온 글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글쓰기의 최소한의 기본도 없는 이들이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이 아니라 설교다. 그냥 모든 사람을 가르치려는 태도로 일관되어 있다. 또 하나는 1000자 정도에 맞추라고 해도 맞추질 못한다. 거의 2천 자는 기본이고 3천 자가 넘는 이들이 많다. 1000 전후로 맞추려면 글을 완전히 새로 써야 한다. 어쩔 때는 대략적인 주제만 잡고 내가 새로 쓰는 경우가 허다했다. 기분 좋아하는 목사도 있고, 자신의 글을 훼손? 했다고 기분 나빠하는 목사도 많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근본적은 몇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본다. 먼저 목사라는 거만함 때문이다. 서구의 목사들은 수평적 개념이 강하다. 하지만 한국의 목사는 한 교회를 대표하는 정도를 떠나 왕에 가깝다. 자신의 신성한 진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무조건 내가 옳다'라고 주장하는 성향이 매우 매우 매우 강하다. 이러한 태도를 버리고 자신의 무지와 무식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무지를 아는 겸손은 그것이 능력이다.

 

두 번째는 게으르다. 그들의 목회나 생활이 게으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중의 많은 수의 목사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정신없이 바쁜 목사들도 많다. 그럼에도 자신의 writer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해 보지 않거나 개선의 의지 자체가 없다. 글쓰기는 배워야 한다. 배움은 얼마든지 스스로 가능하고, 인터넷이나 책, 또는 실제 글쓰기 강좌에 가서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목사들은 배우지 않는다. 거만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만이란 문제를 조금 고민해 봐야 한다. 왜 목사들은 거만할까? 진리를 다루기 때문이다. 진리를 읽고, 진리를 설교하기 때문이다. 누가? 목사들이.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목사들에게 너무나 강하다. 성경강해나, 설교를 자신의 일상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적용하는 것이 문제다. 예수님이 진리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정당이 진리는 아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지만, 자신이 좋아는 음식이 유일한 진리는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목사들은 진리를 일상에 욱여넣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거만해진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는 매우 편협적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목사들은 한결같이 답답하고 소통이 힘들다. 좋은 목사들도 많지만, 그들도 매우 편협적이다. 왜 그럴까? 그것도 사실은 진리를 다루기 때문이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진리의 문제로 모든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도 무오한 진리처럼 생각하는 목사들이 많다. 평생 목사만 하는 사람들은 사람과의 소통이 매우 제약되어 있고, 편협적이다. 예전에는 참 좋아했지만 지금은 극혐 하는 단어가 '일념목양' 또는 '일념목회'이다. 평생 목회를 하면 주를 위해 헌신했다는 미사여구는 그가 일반 교인들의 사정을 조금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목사들은 종종 목회를 그만두고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편의점 알바도하고, 택배도 하고, 회사에 들어가 말단으로 근무도 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그러한 일을 하면서 세상이 얼마나 험악하고 무서운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목회가 얼만 편하고, 쉬운가를 알게 된다. 물론 목사들의 말할 수 없는 애로를 어찌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목사는 편하다. 아 사실을 목사들은 잊으면 안 된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글쓰기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가 위의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지도를 해보면, 약간의 훈련을 받고도 많은 개선을 이루는 목사들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쓰기를 배우려는 목사들은 이미 평소에도 많은 책을 읽고 글쓰기 훈련을 하는 이들이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는 주님의 말씀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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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을 위한 독서법

Book Column|2023. 12. 2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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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

 

영적 성장이란 표현은 정의하기가 참으로 애매합니다. 저는 영적 성장을 '그리스도를 닮음'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언어적 측면과 삶의 태도, 그리고 지성적 측면까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죠.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 두 가지의 큰 전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거듭남이며, 다른 하나는 지성의 훈련입니다. 독서는 지성의 훈련에 해당됩니다. 독서를 통해 거듭나지 않기 때문이죠. 물론 불신자가 성경을 읽거나 기독교 서적을 읽고 은혜받아? 기독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건 겉으로 드러나 여정이고 구원서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성령의 내주 하심을 통한 변화입니다. 즉 지성 자체가 도움은 되지만 본질적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전제에서 논의가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믿고 생각과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영적으로 깊어지기를 갈망하면서 영적인 것들을 체험하고 싶어합니다. 이때 독서가 개입하게 됩니다. 거듭난 이후 초기에는 급격한 성령 체험과 심적 변화로 큰 변화가 일어나지만 어느 순간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이단으로 빠지거나 잘못된 영적 습관에 빠져 괴상한 신앙이 되고 맙니다.

 

그것은 목회자가 완전히 잡아 주기를 불가능한 어느정도 도움은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독서입니다. 독서를 통해 다양한 영적 체험을 알게 되고, 교회사의 발전 성경적 사유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바른 신앙으로 갖게 되어 성숙한 신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 읽어야 할 책의 종류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읽어야할 책들은 어떤 분야와 종류가 있을까요? 크게 구분하면 하나는 영적 도서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서적입니다. 어떤 광신자들은 일반 서적은 사단의 영향력 아래 쓰인 책이면 터부시 합니다. 제가 보기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사단이 수하들입니다. 굉장히 위험한 사람들이고 무모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멀리해야 그릇된 신앙에 빠지지 않습니다. 태양도 하나님의 것이고, 교회의 십자가도 주님이 허락한 광물을 제련하여 만든 것입니다. 십자가를 만들기 위해서 광물에서 죄나 동을 제련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자들도 아니고 천사도 아닙니다. 광신도처럼 말하면 엄청난 믿음을 소유한 것처럼 착각하지만 바로 그러한 주장이 악한 영에 사로 잡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건 그렇고, 그리스도인들이 읽어야할 분야를 소개해 봅니다. 전에 저는 [그리스도인과 독서]에서 읽어야할 분야의 책으로 성경, 경건 서적, 기독교 고전, 교회사를 추천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구체적으로 언급하려고 합니다. 

 

성경을 읽어라

 

성경을 읽지 않고 영적 성장을 이루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기본 중이 기본입니다. 성경은 주기적으로 매일 읽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 읽기에 대한 내용은 아래의 글에서 확인하십시오.

 

성경을 읽는 단계와 방법

 

 

경건 서적을 읽어라

 

두 번째는 경건 서적입니다. 경건이란 단어에 과하게 주목하지 마십시오. 경건은 '하나님을 닮음(godly)'입니다. 예전에 총신대 문병호 교수는 <30 주제로 풀어쓴 기독교강요>에서 칼뱅의 경건을 풀어내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경건은 위로부터 하나님의 계시를 내려받은 성도가 그리스와 연합하며 그분과 교제하며 교통하고 아래로부터 합당한 예배를 올려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경건입니다. 경건 서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체험하고 깨달은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가볍게는 간증문에서, 경건 읽기, 묵상 글 등이 있습니다. 경건 서적은 포괄적인 주제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 고전이 경건 서적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칼뱅의 서신이나, 웨슬리 일기, <그리스도를 본받아> 등도 경건 서적입니다. 이러한 책은 저자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것들이며, 영적 체험을 기록한 것들입니다. 경건 서적을 통해서 믿음이 대가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하고 성숙한 믿음으로 진보했는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경건 서적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체험을 알게 되고, 잘못된 체험이 무엇인지 판별할 수 있는 능력도 갖게 됩니다.

 

기독교 고전을 읽어라

 

기독교 고전은 생각보다 범위가 넓습니다. 요한계시록 이후 2세기부터 시작해서 20세기까지 이르는 거의 2천 년 동안의 중요한 책들이니 책 권수만 해도 수천 권에 달합니다. 하지만우리가 그러한 책을 굳이 다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몇 권의 책은 반드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거스틴의 <고백록> 단테의 <신곡>,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볻 받아> 등이 있습니다. 앞의 책들이 2세기부터 18세기 이전의 책들이라면 20세기 이후의 책들 중에도 중요한 책들이 있습니다. C. S. 루이스 <영광의 무게>, 드리트리히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 자크 엘륄의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등은 명저 중의 명저입니다. 이러한 책을 통해 뛰어난 기독교 사상가들의 깊이와 하나님에 대한 교제의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CH북스에서 기독교 고전 시리즈로 현재까지 약 55권 정도 출간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책을 읽을 필요는 없지만 꽤나 괜찮은 책들을 선별한 것이니 뭘 읽어야할지 모른다면 이쪽의 책들을 구입해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교회사를 읽어라

 

교회사는 교리사, 서야의 역사, 현재 기독교 안에서의 다양한 종파들,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뿌리와 믿음의 내용들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교회사를 알지 못하면 신앙의 절반은 알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사와 간략한 중세교회, 그리고 근대 교회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복잡하고 난해한 교회사는 교회사 전공자가 아니면 굳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너무 간략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추천하는 책은 후스토 L. 곤잘레스의 교회사 시리즈입니다. 안타깝게 한국의 장로교단과는 약간이 신앙의 차이가 있어서 현대교회로 넘어오면 거슬리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스토리텔링하고 잘 서술하고 있어서 크게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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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는 단계와 방법

Book Column|2023. 12. 2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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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읽는 단계

 

새해가 되면 성경 1독 또는 다독 등의 다양한 목표를 세웁니다. 그런데 대부분 성경을 1독 하려는 계획은 세우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포기하곤 합니다. 성경 읽기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성경 읽기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 읽기를 단계별로 나누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소개하는 내용을 절대화할 수는 없지만 잘 활용하면 많은 내용을 파악하고 담을 수 있습니다.

 

 

1단계, 개요서 읽기

 

저는 초신자나 성경을 단 한 번도 1독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곧바로 성경 읽기로 들어가는 것은 절대 반대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만만한 책이 아닙니다 아무리 성경이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쉽게 접근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모든 운동에 준비 운동이 필요하고, 차도 운행하기 전에 잠시 엔진을 데우는 시간이 필요하듯 성경 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 추천으로 교회에서 성경 통독반을 주기적으로 운영하여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목회자 한 분이 성경의 전체 내용을 1-2회로 나누어 소개하면 좋습니다. 너무 복잡하게 하지 말고, 성경의 구조와 역사만 간략하게 설명하면 됩니다. 주일 오후 예배 마치고 1-2시간 정도 2회 정도 하시면 신구약을 다 할 수 있을 정도록 진행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이것도 하나의 일이 되고 맙니다.

 

아래의 책들은 성경의 개요를 알 수 있도록 만든 책들입니다. 테리홀의 <성경 네비게이션>과 <성경 파노라마>를 추천합니다.  조대현의 <하루 만에 꿰뚫는 만화 성경관통>도 괜찮습니다. 신구약이 나누어져 있으니 두 권을 구입해 읽으시면 좋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갓피플로 이동합니다. ※ 

 

2단계, 통독하기

 

두 번째 단계는 성경 전체를 살폈으니 곧바로 통독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 통독을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합니다. 이 부분은 후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 성경 통독 방법

 

 빠르게 읽어라.

 

성경은 천천히 읽는 것이 좋지만 성경 통독을 위한 성경 읽기라면 빠르게 읽어야 합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넘어가고, 어떤 내용인지 몰라도 그냥 넘어가십시오. 오로지 성경 전체를 1 독한다는 마음으로 빠르게 읽어야 한다.

 

같이 읽으십시오.

 

혼자가 힘들면 성경 통독자를 모아 같이하십시오. 물론 모으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같이 읽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같이 읽는 것입니다. 혼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면 그냥 혼자 읽으십시오.

 

어디서든 읽으십시오.

 

집에서든 차에서도 지하철이든 회사에서도 읽어야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만 읽으려고 하지만 짜투리 시간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빠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집에 자주 있어서 사용하지 않지만, 회사에 다닐 때 통독할 때는 아래 사진처럼 분권 된 성경을 구입해 성경을 읽었습니다. 요즘은 전자책이 있어서 핸드폰이나 탭을 사용해 읽는 것도 괜찮습니다.

 

 

 

성경 통독 방법은 여기까지 합니다. 후에 더 깊이 다루고 앞에 소개한 부분만 지키면 충분히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성경 통독은 한 번으로 끝내지 말고 기독교인이라면 평생 일 년에 한 번은 통독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50독 가까이했으니 아직도 부족합니다. 습관적으로 성경을 읽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3단계, 책별 성경 읽기

 

통독은 가능한 기본 3독은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한 번 읽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독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감이 오면 3독쯤 되면 앞서 파노라마 같은 책에서 소개한 내용들이 눈에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 정도 수준이 되면 성경 읽기 초보는 벗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다음 3단계는 책별 반복 읽기가 좋습니다.

 

창세기면 창세기, 마태복음이면 마태복음.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읽는 것이죠. 책별 읽기의 경우는 빠르게 읽기와 천천히 읽기를 병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을 책별 읽을 때는 다독을 목적으로 합니다. 창세기나 이사야 같은 긴 장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2-3번 정도 읽는 것을 목적으로 하십시오. 신약의 경우 짧은 서신서는 한 시간에 몇 번에서 몇십 번도 읽을 수 있습니다. 고민하지 말고 그냥 반복적으로 읽는 것을 목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4단계, 단락별 성경 읽기

 

단락별 성경 읽기의 다른 말은 요즘 보통 '묵상'이란 단어로 많이 사용합니다. 한 장 전체도 아닌 한 단락을 구분히 읽고 묵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매일 성경 묵상집이 이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묵상에 대한 장단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성경 읽기 계단을 차분히 밟아 왔으면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습니다.

 

묵상의 오류의 대표적 특징은 과도한 감정적 또는 사적 해석을 통해 성경이 본래 의도한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류는 성경을 단편적으로만 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성경전체를 반복으로 통독하고,  책별 성경 읽기를 통해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단락별 읽기로 들어가면 성경전체와 한 권 전체의 안목에서 읽기 때문에 묵상의 오류에 빠지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 통독전에 서경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개요서를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도 수십 번을 읽지만 종종 개요서를 통해 성경의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5단계,  통독과 묵상을 병행하기

 

성경 통독은 일년 한 번 정도 주기적으로 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3-4년 주기로 성경통독을 하면 좋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성경이 다시 감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성경의 전체 흐름을 이해하고 성경이 익숙해지면 매일 일정 부분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 때는 성경을 빠르게 읽어서는 안 되고 가능한 천천히 읽고, 반복하여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이상으로 성경 읽기의 다섯 단계를 소개했습니다. 절대적 방법이고 꼭 이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개인에게 맞는 방법과 순서를 찾으면 됩니다. 저의 경우는 성경 통독을 먼저 했고, 나중에 이해가 되지 않아 개요서를 찾아 읽었습니다. 처음에 성경 읽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힘들었기 때문에 초신자의 입장에서 성경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 읽는 방법

 

이제 성경을 읽는 방법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성경 읽는 방법은 후에 따로 더 상세히 그리고 깊이 다루고 여기서는 간략하게 소개만 하겠습니다.

 

묵독. 눈으로 읽기

 

이런 것도 방법인가 싶지만 중요한 방법이니 앍고 계십시오. 그냥 소리 내지 않고 빠르게 묵독으로 읽는 방법입니다. 제가 성경을 1주일 안에 통독하려고 할 때는 묵독으로 하루에 몇 백장을 통으로 읽어 나갑니다. 묵독은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머리에 남는 것이 많지 않다는 단점도 존재하고, 종종 피곤할 때는 자신이 읽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낭독, 입으로 읽기

 

낭독의 경우는 한 장 읽기나, 단락 읽기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낭독하면 속도가 느립니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고, 의미를 깊이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읽기의 기본은 낭독입니다. [그리스도의 성경을 대하는 자세]의 '성경을 묵상하라'를 읽어 보십시오. 

 

요약, 다시 쓰기

 

지금은 거의 하지 않지만 초기 신학생 때 많이 했습니다. 성경 한 장을 읽고 한 장을 몇 문장으로 요약해 두는 것이죠. 일종의 장별 요약과 같은 것이지만 단지 사실만을 적지 않고 저의 생각을 섞어 적었습니다. 그런 방금 읽었던 내용을 다시 정리할 수 있어 좋습니다.

 

주제별로 읽기

 

주제별 성경 읽기는 읽는 수준을 너머 연구의 수준까지 들어가는 단계입니다.

  1. 인물별로 읽기
  2. 교리주제 찾기
  3. 성경의 전쟁 시리즈
  4. 지리에 대해 읽기

등이 있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정말 많은 것을 얻게 합니다. 성경을 잘 알아야 믿음이 깊어지고, 영적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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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성경을 대하는 자세

Book Column|2023. 12. 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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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이란?

 

성경을 대하는 자세는 결국 '성경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먼저 내려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정의 또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저는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핵심인 '하나님의 구속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저는 책과 말씀이란 두 축을 이해할 때 비로소 성경을 대하는 바른 자세가 정립될 수 있다고 봅니다. 책은 읽어야 하고, 연구되어야 합니다. 또한 계시로서의 성경은 들어야 하고 순종해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

 

학문으로서의 성경, 계시로서의 성경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며,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계시로서만의 성경을 추구하여 맹목적으로 성경을 '덮어 놓고 믿는다'라고 말하면 성경은 미신이 됩니다. 역으로 학문적으로서 성경만을 추구한다면 학자일 수는 있으나 신자는 아닙니다. 성경은 믿을 때 알 수 있습니다. 믿지 않으면 알 수 없기에 진정한 앎은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측면에서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으로서의 성경

 

책과 계시로서의 성경은 어느 무엇이 먼저일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이 계시,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책으로서의 성경을 대하는 자세는 몇 가지로 구분하여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성경을 읽어라

 

가장 먼저는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책이 아닌 계시로서의 성경에서도 당연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읽는다는 것은 주의하여 본다는 것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읽음'을 수용이고, 해석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라

 

성경은 학문적 가치가 충분합니다. 왜라고 묻는다면 성경을 기독교인의 경전이란 개념에서 역사적 사회적 측면에서 성경이 가진 영향력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구의 사상, 아니 인류의 사상을 이해하는 성경을 알지 못하다면 2/3는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의 중동 전쟁,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 미국의 패권, 서양의 역사 등등 수많은 이슈와 정치, 경제, 군사적 대립, 종교적 갈등의 뿌리에는 성경이 스며 있습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면 절반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가 신학자처럼 깊이 성경을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 성경이 무엇인지, 어떤 내용과 주장을 하는 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계시로서의 성경

 

 성경을 묵상하라

 

'묵상하다'의 '하가다'를 직역하면 '낭독하다'는 뜻입니다. 입으로 말씀을 읽고 중얼거리는 것을 말합니다. 중얼거린다는 표현이 썩 어울리지 않지만, 반복하여 읽다로 이해하면 됩니다. 하가다가 묵상이란 한자어로 번역되면서 한국인들에게 소리 내어 읽는 느낌이 아닌 절이나 선원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에게 성경은 그런 조용한 묵상이 아니라 시끄럽게 소리 내어 읽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독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낭독은 수천 년이 되지만 묵독은 불과 200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묵독이나 낭독의 개념이 아니라 시편 1편에 나온 것처럼 주야로 성경을 묵상(하가다)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묵상은 성경 읽기를 말하며, 읽기는 낭독을 말합니다. 낭독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하면 너무 좋지만) 습관적으로, 매일 꾸준히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영혼의 양식으로 알고 매일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공부하라

 

연구와 공부와 같은 말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공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학문적 개념으로서의 접근이 아니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배워야 합니다. 성령께서 꿈에 나타나 가르쳐 준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을 공부함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은혜의 방편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구속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과 종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실천하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을 말씀에 대해 순종하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아무리 듣고 배워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 읽기의 고충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지만 실천하기를 힘이 듭니다. 참으로 성경 말씀은 입에나 달지만 속은 씁니다.

 

  • 요한계시록 10: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성경을 알고 실천하지 않으면 자기기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 또한 성경을 읽고 실천할 때 진정한 앎에 이릅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참 지식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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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독서

Book Column|2023. 12. 25.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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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독서 생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에서 그리스도인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사도행전 11:26입니다.

  • 행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이 단어가 중요한 이유는 그 직전까지만 해도 이방인 세계에서 구약 성경을 따르는 기존 유대인-히브리인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이방인뿐 아니라 기존의 사도들이나 제자들도 의도적으로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예수님도 유대인이고, 제자들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기념이 존재하지 않았고, 유대인 안에서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 정도로만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복음이 사마리아와 다른 이방 세계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회당 중심의 유대인들과는 다른 차별성이 분명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기존의 유대인들과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당시는 이방인도 상당수가  포함됨)을 구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일종의 구별법이자, 조롱에 가까운 표현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의미를 논하거나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왜 책을 읽어야 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읽어야 할 필독서

 

성경을 읽어라

 

기독교인은 그 무엇보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영적 양식입니다. 성경은 가능한 매일 읽어야 하며, 주기적으로 통독해야 합니다. 성경은 삶의 방향과 원칙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경건 서적을 읽어라.

 

경건 서적이란 개념이 포괄적이긴 하지만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책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경건서적은 성경과 달라 오류도 있고, 편협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경건 서적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록하고 풀어놓은 것이기에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기독교 고전을 읽어라.

 

기독교 고전을 어떻게 정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저는 18세기 정도까지 정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독교 고전은 초대교회 속사들의 문헌과 중세 시대의 경건 서적, 종교개혁가들의 서적들, 그리고 그 이후의 빼어난 믿음의 사람들의 서적들입니다. 모든 기독교 서적이 저의 신앙과 일치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럼에도 기독교 고전이라 부를 수 있는 책들은 지금까지 기독교가 걸어온 신앙의 흔적과 교리의 변화 등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교회사를 읽어라.

 

교회사 기독교 고전은 맥을 같이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차별성이 존재합니다. 고전은 한 권의 책이지만, 교회사는 큰 흐름을 보여주니다. 현대 많은 교단과 교회, 종파 존재합니다. 왜 동일한 예수님을 믿으면서 이렇게 다를까?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구심을 풀어줄 책이 바로 교회사입니다. 교회사는 교리사이기도 하며, 서양의 역사인 동시에 현대의 다양한 교회가 왜 생겨났는지를 알려주는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사는 신앙의 뿌리를 알고자 하는 들에게는 필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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