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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 묵상] 창세기 11:1~9

책익는계절 2025.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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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으심과 다시 모으심: 바벨탑에서 오순절까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강림주일에 함께 예배드릴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사도행전의 성령강림 사건과 깊은 대조를 이루는 구약의 본문, 창세기 11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바벨탑 사건은 단지 옛날 이야기를 넘어섭니다.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개입, 흩으심과 언어의 혼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회복하신 성령의 은혜가 담긴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교만과 자기 이름 높이기

본문을 함께 읽어 봅시다. 창세기 11장 1절부터 9절입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인류는 홍수 이후 셈의 자손들을 통해 번성했고, 시날 땅에 이르러 성과 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명확했습니다. "자기 이름을 내고"(창세기 11:4), 흩어짐을 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름"(히브리어: shem)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정체성과 영광, 자아의 권위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보다, 자기 이름을 세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9:1)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거부하고 스스로 모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창조 질서에 도전하는 행위이며, 창조주를 잊고 피조물이 중심이 된 세계관의 시작이었습니다. 죄는 언제나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합니다.

언어의 혼잡: 하나됨의 붕괴

하나님은 그들의 계획을 막기 위해 언어를 혼잡하게 만드십니다.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창세기 11:7) 하셨습니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 원어 balal(혼잡하게 하다)는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키는 의미를 갖습니다. 공동의 언어로 하나됨을 유지하던 인간 사회는, 언어의 혼란으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사소통의 단절은 곧 관계의 붕괴이고, 공동체의 해체를 뜻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이는 바벨탑의 죄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시고"(창세기 11:8), 그 도시는 바벨이라 불리게 됩니다. 바벨(Babel)은 바빌론의 어원이 되며, 이후 성경에서는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을 거스르는 상징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사야 13장, 계시록 18장 등).

하나님의 흩으심과 구속사의 통치

하나님은 왜 흩으셨을까요? 단순한 징벌로 보이지만, 그 속엔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 뜻을 따라 계획하고 스스로 높아지려 할 때, 하나님은 그 악한 도모가 이루어지기 전에 개입하셨습니다. 칼빈은 이 본문을 해석하며 "하나님의 중재가 없었다면, 인간은 스스로 무너졌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무너져 내릴 인간의 미래를 막으시고, 흩으심이라는 방식으로 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흩으심은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위한 여백입니다. 인간은 흩어짐 속에서 자신을 의지하던 삶을 멈추고,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가 깨어지고, 계획이 무산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질문하게 됩니다. "주여,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바로 그 질문의 자리가 구원의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흩으시고 나서도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흩어진 땅들 가운데서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창세기 12:1-3). 흩으심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분의 구속사는 혼돈 속에서도 중단되지 않았고, 오히려 흩어진 가운데서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바벨의 흩어짐은 아브라함의 부르심으로 이어지고, 아브라함의 언약은 이스라엘을 이루며,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인간의 좌절 위에 덧입혀진 은혜의 옷과 같습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은 다시 일하십니다. 그래서 흩으심은 단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역설적 통로입니다.

오순절과 언어의 회복

이제 우리는 바벨 사건과 대조되는 오순절 사건을 떠올려 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임하셨을 때, 제자들은 각 나라 말로 복음을 선포합니다 (사도행전 2:4-6). 이때 사용된 단어 glōssa(방언)은 실제 외국어를 뜻하며, 듣는 사람들은 "우리가 각기 자기 나라 말로 듣고 있다"고 반응합니다.

바벨에서 혼잡해진 언어는 오순절에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다시 이해되고 회복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구속사의 회복입니다. 성령은 인간의 죄로 무너졌던 공동체를 다시 세우시고, 흩어진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묶으십니다. 언어는 더 이상 갈등의 도구가 아니라, 복음의 통로가 됩니다.

교부 크리소스토무스는 이 장면을 "하늘의 오케스트라"라 표현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들이 하나의 복음을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바벨과 오순절 사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자기 이름을 세우려 무언가를 쌓고 싶어지고, 언어는 오해와 분열의 도구가 되며, 공동체는 쉽게 흩어집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의 언어는 다시 이해의 도구가 되고, 서로의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로 사용됩니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고, 교회를 회복시키며, 각 사람을 복음의 전달자로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무너진 바벨의 유산 위에 성령의 불로 새롭게 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성령 안에서 듣고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공동체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강림의 본질이며, 오늘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결론 정리

오늘 우리가 창세기 11장을 통해 받은 말씀은 단지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패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발견하는 일입니다. 바벨의 무너짐은 오순절의 시작을 위한 전주였고, 흩어짐은 모으심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시 모여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이 자리가 바로 성령의 임재가 머무는 자리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성령의 언어로 서로를 이해하는 공동체로 자라가길 축복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2:21)

이 말씀은 바벨에서 흩어졌던 이들, 오순절에 모였던 이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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