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묵상/교회력묵상

로마서 8:14~17 성령강림주일 설교

책익는계절 2025. 6. 7.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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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로마서 8장 14절부터 17절까지의 본문을 통해 성령이 우리 안에서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성령 안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묵상해보려 합니다. 성령은 단지 능력이나 감정의 자극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정체성과 운명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사역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새롭게 경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인도: 삶의 방향을 바꾸다 (로마서 8:14)

본문을 읽어 봅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로마서 8:14).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인도함을 받는"입니다. 헬라어 원어는 agontai로, "끌려간다, 인도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지 조언을 듣는 것이 아니라, 전 인격이 이끌림을 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단순한 조언자가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 삶을 실제로 이끄시며, 방향을 바꾸고 목적을 전환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 살던 자였지만, 이제 성령께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이끄십니다. 이끌림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전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관계 안에 있다는 뜻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증표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단지 지위의 선언이 아니라, 정체성의 변화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제 더 이상 세상의 가치나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로 여기시고, 그 뜻에 따라 걸어가도록 인도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종의 영이 아닌 양자의 영 (로마서 8:15)

계속해서 15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바울은 여기서 두 가지 영을 대조합니다. 하나는 종의 영, 다른 하나는 양자의 영입니다.

종의 영은 율법 아래 살아가던 상태, 즉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죄를 의식하며 살던 삶을 상징합니다. 종은 주인의 뜻에 복종하지만, 그 안에는 거리감이 있고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양자의 영(헬라어: pneuma huiothesias)은 입양된 자녀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입양은 당대 로마법에서도 매우 강력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 제도였으며, 입양된 자녀는 친자식과 동일한 권리를 누렸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법적으로, 관계적으로, 실제로 자신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 그것도 "아바"라 부를 수 있습니다. "아바"는 아람어로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는 친밀한 호칭입니다. 이는 단순히 '하늘의 하나님'이 아닌, '내 아버지 하나님'으로 다가오시는 분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은 우리 안에 양자의 영으로 임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게 하시며,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사랑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성령의 증언: 내적 확신의 근거 (로마서 8:16)

다음으로 16절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여기서 "증언하시나니"라는 말은 헬라어 summarturei, 즉 함께 증언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의 영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가? 나는 구원받은 자인가?" 이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래, 너는 하나님의 자녀야. 하나님은 너를 버리지 않으셨고, 너를 부르셨으며, 너를 끝까지 붙드실 것이다."

이 내적 증언은 단순한 감정의 동요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때, 기도할 때, 공동체 가운데 있을 때, 성령께서 우리의 영과 교통하시며 자녀 된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이 확신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신앙의 뿌리를 깊게 내리게 합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 구절을 가리켜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도 역사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성령은 외적인 교리의 전달자만이 아니라, 내면에서 진리를 증언하시는 분입니다.

상속자 됨과 고난의 동참 (로마서 8:17)

마지막으로 17절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특권이지만, 동시에 책임이 따릅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말이지요. 여기서 "상속자"(헬라어: klēronomos)는 유산을 물려받는 자를 말합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수혜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유산을 함께 나눌 상속자입니다.

그러나 이 상속은 그리스도와 함께한 고난을 통과해야만 완성됩니다. 예수님도 먼저 고난을 받으셨고, 그 후에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 길을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이 고난의 길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이 고난은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광으로 가는 길이며, 성령의 인도 아래 있는 자만이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단지 은혜를 느끼게 하는 분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고 인도하시는 위로자이십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강림주일에 우리는 성령의 오심을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령께서 오늘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현실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끌어 가십니다.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종의 자세에서 자녀의 확신으로, 고난 속에서도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성령께 인도함을 받으십시오.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공동체와의 교제를 통해 성령께서 주시는 내적 확신을 새롭게 경험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담대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로마서 8:17). 이 말씀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깊은 위로와 사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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